[책의 향기]국내 海賊박사 1호의 ‘동서양 해적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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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해적/김석균 지음/536쪽·2만8000원·오션앤오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악명 높은 해적 블랙 비어드는 실존 인물이다. 18세기 영국 브리스톨 태생의 사략선(私掠船) 선원 에드워드 티치였다. 1717∼1718년 20여 척의 배를 약탈하며 카리브 해는 물론 미국 동부 해안까지 공포에 떨게 만든 역사상 최악의 해적이었다.

사략선이란 16세기부터 유럽 각국 정부로부터 적국 선박의 나포면허장을 받고 ‘합법적 해적질’을 할 수 있는 민간 선박을 말한다. 대영제국 해군의 역사는 이 사략선에서 시작했다. 1588년 영국 해군을 이끌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퇴한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1596)는 사실 1577∼1580년 남미 해안에서 스페인 배를 약탈하던 사략선 선장이었다. 그가 1579년 1200만 파운드의 보물을 실은 스페인의 카카푸에고호를 약탈한 사건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 해적질로 꼽힌다.

그렇다면 티치는 왜 드레이크 같은 영웅이 못 되고 블랙 비어드로 전락했을까. 역설적이게도 1714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끝난 뒤 25년간 평화의 시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해군은 4만 명이나 일자리를 잃었는데 사략선마저 금지되자 무자비한 해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해적은 이처럼 평화와 빈곤이 결합한 산물일 때가 많다. 현대의 해적 역시 탈냉전기 평화와 제3세계 빈곤이 만나며 탄생했다.

해적 문제로 박사논문을 써 ‘해적박사’로 통하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미노스문명 시절부터 소말리아 해적까지 4000년 해적의 역사를 종합했다. 해적에 덧씌워진 자유와 낭만의 포장 아래 감춰진 비참한 실상을 드러냈다. 서양사 치중이 아쉽지만 왜구를 포함한 아시아 해적의 역사도 2장에 걸쳐 소개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바다와 해적#사략선#김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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