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뭐가 더 정의로운 사회적 삶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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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냐, 인정이냐?/낸시 프레이저, 악셀 호네트 지음/김원식, 문성훈 옮김/400쪽·2만5000원·사월의책
세계적인 비판이론가 프레이저 vs 호네트 논쟁

‘분배냐, 인정이냐?’의 저자 낸시 프레이저 미국 뉴스쿨대 정치·사회학과 교수(왼쪽)와 악셀 호네트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철학과 교수. 호네트가 경제 구조 내의 왜곡된 인정 질서로부터 경제적 불평등이 기인한다고 보는 ‘분배 일원론’을 주장한다면, 프레이저는 분배와 인정은 밀접히 연결돼 있지만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인정-분배 이원론’을 주장한다. 사월의책 제공
‘분배냐, 인정이냐?’의 저자 낸시 프레이저 미국 뉴스쿨대 정치·사회학과 교수(왼쪽)와 악셀 호네트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철학과 교수. 호네트가 경제 구조 내의 왜곡된 인정 질서로부터 경제적 불평등이 기인한다고 보는 ‘분배 일원론’을 주장한다면, 프레이저는 분배와 인정은 밀접히 연결돼 있지만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인정-분배 이원론’을 주장한다. 사월의책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가 구축해 놓았던 ‘통제된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1980년대 본격화된 지구화는 기존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고 있다. 특히 자본과 인구의 역동적인 이동이 빚어낸 변화는 민족 국가 단위로 구성되어 있던 정치·철학이론 자체에도 큰 도전이다. 경제적 기회를 찾아 부유한 국가로 유입되는 인구의 이동은 단순히 몸의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의 유입이다. 이에 대해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세계적 비판이론가인 미국의 낸시 프레이저(67)와 독일의 악셀 호네트(65)가 벌인 논쟁은 이런 도전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분배’와 ‘인정’이라는 관점에서 맞선다. 프레이저의 문제 제기와 호네트의 반박, 그에 대한 프레이저의 재반박과 호네트의 응답 순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마치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철학자는 모두 이 책에서 ‘분배’와 ‘인정’이 함께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결정적 차이라면 프레이저는 분배와 인정이 연결은 되어 있지만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다른 정의 체계로 보는 반면에 호네트는 분배의 문제를 인정의 또 다른 표현방식으로 본다는 데 있다.

유럽 국가 중에서 이민자에게 가장 개방적이지만 2005년 이후 이민자 폭동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프랑스 사례를 살펴보자. 프레이저는 폭동 가담 이민자 대부분이 빈민이라는 점에서 ‘분배’라는 정의의 영역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폭동이 발생했다고 본다. 반면에 호네트는 동등한 권리에 입각해 사회 구성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를 보장하는 데 실패한 프랑스의 사회적 인정구조에 대항한 이민자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일견 호네트의 분석이 더 심오해 보이지만 프레이저가 제시하는 ‘인정’과 ‘분배’의 환원 불가능성도 설득력이 있다. 이주 노동자는 임금 체계에서 불평등(분배)뿐 아니라 외모상 차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대우(인정)까지 추가 부담해야 한다. 여성 이주노동자에겐 이런 이중적 불의가 한층 심화된다. 프레이저는 ‘인정’과 ‘분배’를 구분해서 볼 때만 이런 이중적 불의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인정’과 ‘분배’는 먼 나라 문제가 아니다. 당장 한국 사회에도 탈북자 문제가 있다.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서 가장 먼저 맞는 도전은 남한 사회의 새로운 문화를 익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다문화주의’ 구성원이다. 생경한 자본주의 체제 문화를 익히는 일을 마치면 이들은 다시 탈북자를 향한 편견의 시선 아래 얼마 되지 않는 지원금을 들고 생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탈북자는 북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프레이저와 호네트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인정’과 ‘분배’의 문제를 연결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지는 않을까.

김만권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분배냐#인정이냐?#낸시 프레이저#악셀 호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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