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廣州대단지 키드는 왜 ‘진보의 괴물’이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경기동부/임미리 지음/256쪽·1만3000원·이매진

19세기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은 이름이 없다. 사람들은 그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으로 그 이름을 기억한다. 21세기 한국에도 그와 유사한 ‘괴물’이 있다. 20세기 유물인 ‘종북’과 21세기적 ‘진보’가 기괴하게 결합한 통합진보당(통진당) 당권파의 핵심조직인 경기동부연합이다.

경기동부연합이 언론에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2012년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사태 때부터다. 그 대부분은 1980년대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의 영향을 받은 주사파 조직이라는 ‘사상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기동부연합의 모태라 할 경기 성남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이수한 저자는 그 ‘지역성’에 주목했다. 왜 하필 성남인가? 거기엔 ‘1980년 광주(光州)’ 이전의 ‘1971년 광주(廣州)’가 숨어 있다. 바로 박정희 정부 시절 서울시 무허가판자촌에 살던 철거민 13만 명을 강제 이주시킨 ‘광주대단지’(현재의 성남시)에서 1971년 발생한 도시빈민 봉기 ‘8·10 사건’이다.

‘광주대단지 키드’로 이뤄진 경기동부연합에 이 사건은 ‘빅뱅’의 기점이다. ‘산모가 배고파 자기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이 횡행할 만큼 비참한 환경에서 자란 그들에게 이 사건은 자부심의 원천인 동시에 트라우마였다. 8·10 사건은 단 하루 동안 수만 명이 참여한 시위로 정부를 굴복시키며 오늘날 성남시의 발전을 낳았지만 동시에 ‘난동과 폭동의 도시’라는 집단 낙인 효과도 낳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철저히 버려졌다는 소외감과 그래서 더욱 똘똘 뭉치는 집단의식의 원천이 됐다. 여기에 조직원의 충성과 헌신을 강조하는 주사파의 ‘품성론’이 더해지면서 한국 진보세력 내 최강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왜곡되고 배타적인 내부단결력이 결국 ‘국민의 눈높이’보다 ‘당원의 눈높이’를 앞세우며 민주주의의 훼손과 진보의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경기동부연합을 인도 농민반란을 토대로 이론화된 ‘하위주체’(서발턴)의 특징인 부정성, 연대성, 폭력성, 영토성과 연결해 풀어낸 점도 흥미롭다. 그래도 박근혜 정부 최대 공적이 된 ‘괴물’이 ‘박정희 시절’의 원죄에서 태동했다는 아이러니만큼 강렬할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경기동부#경기동부연합#광주대단지 키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