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달라도 구도의 마음은 하나” 맑디맑은 삼각관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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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 진행 인터넷 유나방송 찾은 이색손님… 장익 주교와 이창재 감독
라디오 방송 진행자와 애청자로 만나 23년째 인연 이어오는 스님과 신부님
말기암 환자 다큐 찍는 李감독도 합류

서울 창의문로의 한 명상센터에서 만난 이창재 감독, 장익 주교, 정목 스님(왼쪽부터). 이들은 “사람들이 생로병사 중 생만 반기고 ‘노병사’는 애써 피하려고 한다”며 “아름다운 삶을 위해 노병사에 관한 고민과 대화가 절실
하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 창의문로의 한 명상센터에서 만난 이창재 감독, 장익 주교, 정목 스님(왼쪽부터). 이들은 “사람들이 생로병사 중 생만 반기고 ‘노병사’는 애써 피하려고 한다”며 “아름다운 삶을 위해 노병사에 관한 고민과 대화가 절실 하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절집의 큰어른 스님 같으세요. 호호.” “오늘 스님들과 옷 색깔 좀 맞췄는데. 허허.” 가톨릭 노(老)주교의 농담에 비구니 스님은 다시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비울수록 가득하네’의 저자이자 ‘힐링 어머니’로도 불리는 정목 스님(53)과 천주교 춘천교구장을 지낸 장익 주교(81)의 말이다. 17일 정목 스님이 진행하는 인터넷방송 유나방송이 있는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명상센터에 이색손님들이 찾아왔다. 비구니의 삶을 다룬 영화 ‘길 위에서’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47)은 장 주교보다 한발 먼저 도착해 센터 구경에 바빴다. 》

○ “스님 같다는 분도 있어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로만 칼라 차림의 노신부와 스님, 영화감독이 어색하지 않게 공양게(供養偈)를 함께 읽은 뒤 수저를 들었다. 들깨를 넣은 쑥국과 봄나물 식단이다.

장 주교와 정목 스님의 인연은 22년 전인 1992년으로 거슬러 간다. 장 주교가 스님이 진행하던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의 애청자가 된 것. 목소리만으로 팬이 된 당시 장 신부는 정목 스님과 가까운 지인을 통해 점심을 사고 싶다고 연락했다.

“인사동에서 열무김치가 나오는 보리밥을 사주셨어요. 나이 차가 적지 않았는데도 다른 종교의 대등한 종교인으로 맞아주시는 것이 너무 놀랍고 좋았어요.”(정목 스님)

장 주교는 ‘왜 다른 종교인들과 가깝게 지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불교와 가톨릭은 발심해 수행하고, 대중과 같이 생활하고, 본사나 교구 같은 소속감이 있다는 게 비슷하죠. 형식은 다르지만 의식을 치르면서 기도도 하죠.”(장 주교)

“발심, 수행, 대중, 모두 불교적 언어인데요.(웃음)”(정목 스님)

“가끔 대화하다 저보고 스님 하며 농하는 분도 있는데 잘 봐주신 거죠. 그 말이 싫지는 않아요. 하하.”(장 주교)

두 사람은 장 주교가 춘천교구장으로 옮겨간 뒤에도 소식을 전하며 종교를 넘어 인연을 쌓아왔다.

○ 인연은 돌고 돌아…

이들의 인연은 요즘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이 감독에게 이어졌다.

‘길 위에서’를 관람한 뒤 홍보대사를 자처한 정목 스님은 지난해 8월 도반 혜욱 스님이 주지로 있는 춘천 봉덕사에서 법문 요청이 들어오자 극장에서 신도들과 영화를 본 뒤 법문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장 주교를 정목 스님은 이 감독에게 소개했다.

“제 마음의 ‘방어막’이 좀 단단한 편인데 가장 빨리 마음을 뺏은 분이 정목 스님이죠(웃음). 8개월 가깝게 경기도 포천에 있는 가톨릭계 호스피스 병원 문을 두드렸는데 실패했어요. 영화를 포기하려 할 때 주교님 도움으로 촬영을 시작해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이 감독)

세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의 문제로 옮겨갔다.

“탄생만큼 죽음도 귀해요. 본인에게 쉬쉬하는 죽음이 어디 있습니까? 누가 대신 죽어줍니까. 그 사람의 인생이죠. 하느님도 대신 못 살아줘요.”(장 주교)

“불교는 죽음을 경사로 봐요. 주교님 말씀이 법문 같아요.”(정목 스님)

“세상이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즐거움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준치가 높아져 힘들어하고 쉽게 목숨을 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이 감독)

장 주교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땅에서 나오려면 죽을힘을 다한다”며 “삶의 모든 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창가 밖 뜰에는 노란 복수초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장 주교는 “온통 좋은 일만 있어서는 인생의 스토리가 엮어지지 않아요”라고 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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