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연극-영화의 경계 허문 손가락 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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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거장 감독 자코 반 도르마엘의 ‘키스 앤 크라이’ 리뷰
국내 초연서 관객 폭발적 반응

손가락 춤을 스크린에 확대해 보여주는 ‘키스 앤 크라이’.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기억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법처럼 풀어냈다. 남녀가 서로 기대어 나란히 걷는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손가락 춤을 스크린에 확대해 보여주는 ‘키스 앤 크라이’.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기억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법처럼 풀어냈다. 남녀가 서로 기대어 나란히 걷는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까만 밤하늘에 별이 총총히 가득 박힌 스크린. 마주 보는 그네 두 개가 밤하늘을 가른다. 둘은 서로 닿을 듯 말 듯 부채 모양의 곡선을 그린다. 그네에 탄 건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 두 쌍. 네 개의 손가락은 네 개의 다리가 되어 그네를 구른다.

스크린 아래의 무대 오른쪽. 검은색 바탕에 전구가 가득 박힌 미니어처가 있다. 두 명의 무용수가 손가락으로 그네를 탄다. 스태프는 카메라로 이를 찍어 그대로 스크린에 비춘다.

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손가락 춤 공연인 ‘키스 앤 크라이’는 무용 연극 영화의 경계를 허문 신세계였다. 기찻길 집 스케이트장 사막 등의 미니어처에서 무용수들은 손가락만으로 대화하고 잠자고 물속에서 유영하는 사람을 그려냈다. 이 모습은 동시에 카메라로 스크린에 그대로 투사됐다. 모든 과정이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작업을 통해 한 여인이 사랑했던 다섯 남자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키스 앤 크라이’는 영화 ‘토토의 천국’ ‘제8요일’을 만든 벨기에 감독 자코 반 도르마엘이 안무가인 아내 미셸 안 드 메와 함께 만든 작품. 2011년 벨기에에서 초연됐고 한국에는 이번에 처음 소개됐다. 도르마엘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손가락 공연을 놀러온 손님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보는 이들마다 환호하자 정식 공연으로 만들었다.

‘키스 앤 크라이’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연기를 마치고 점수를 기다리는 공간을 뜻한다. 환희와 절망, 안타까움이 뒤엉키는 곳이다. 이 작품도 함께 했지만 떠나간 이들을 통해 살아가며 맛보게 되는 수많은 감정을 그렸다.

내레이션은 배우 유지태가 맡았다. 도르마엘 감독은 유튜브를 통해 한국 배우와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뒤 ‘감성적이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라며 그를 선택했다.

6일 첫 공연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남은 사흘간의 공연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8일 공연이 끝난 후 한 시간가량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때는 1층 객석이 빼곡히 들어찼다. 한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직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오직 손가락만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표현해 내는 무용수들의 연기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설렘 새침함 놀람 분노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됐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묘사할 때는 손가락이 그토록 관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홉 살 아이와 함께 온 주부는 “(초등학생 이상인) 관람등급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도르마엘 감독은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보여준 이 작품이 삶의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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