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시인 아닌, 즐겁고 흥 많은 김남주를 떠올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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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20주기 추모의 밤 행사 열려… 창비에선 시전집-평론집 펴내

이시영 시인(오른쪽)이 사회를 맡은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에서 고인을 회상하는 소설가 황석영.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시영 시인(오른쪽)이 사회를 맡은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에서 고인을 회상하는 소설가 황석영.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아들 김토일(24)이 말했다. “이 밤, 무거운 시인 김남주보다는 즐겁고 흥 많은 아빠 김남주를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실의 불의와 모순에 항거한 김남주 시인(1945∼1994·사진)의 20주기를 맞아 지난달 28일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이 열렸다. 김남주의 선후배와 벗들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앞다퉈 추억을 퍼즐 맞추듯 그의 생애를 복원해 갔다.

시인의 대학(전남대) 선배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김남주를 처음 만난 196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어수룩하고 말수 적었던 시인은 가끔 선배의 집에 들러 서재에서 책만 뒤적거리다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러던 그가 반유신투쟁 지하신문인 ‘함성’과 ‘고발’을 제작, 배포해 투옥되기까지 5년여의 시간을 회상했다. 김남주가 1974년 여름 계간 ‘창작과비평’에 시로 등단했을 때 둘이 손잡고 팔딱팔딱 뛰었던 기억도 생생했다.

‘창작과비평’ 편집인인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과묵하고 어진 성품을 지닌 이”를 떠올렸다. “‘조국은 하나다’를 읽으며 군중을 모아 감동시키고 선동하는 투사적 모습도 목격했지만 그런 면을 볼 때 잊기 쉬운 남주의 착하고 부드러운 면을 상기시키고 싶다.” 1970년대 농민운동을 함께한 소설가 황석영은 “김남주는 해남에 앉아서 유럽의 혁명사를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농촌의 정서와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 문물을 접한 모던함을 겸비한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창비는 20주기를 맞아 그의 시 519편을 실은 ‘김남주 시 전집’과 평론집 ‘김남주 문학의 세계’를 펴냈다. 여러 시집에 중복 수록되면서 개제(改題), 개고된 경우가 많은 그의 시를 면밀히 검토해 시 텍스트를 확정하고, 집필 시기를 확인해 시의 순서를 배열했다.

김남주가 남긴 시 가운데 360여 편은 옥중에서 씌어진 것이다.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1979∼89년 감옥에 갇힌 동안 우유갑이나 담뱃갑 은박지에 썼다. 시 전집과 평론집을 엮은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김남주에게 감옥은 생산적 창조의 현장, 집필실이었다”면서 “한세상 벅찬 삶을 산 사람으로 그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 임무”라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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