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포서 지드래곤까지 LP 반세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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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가요 LP 안내서 낸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로 갤러리 ‘1984’에서 전시 중인 LP와 가이드북을 소개하는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 최초의 가요 LP 안내서를 낸 그는 “일반인이 봐도 재밌고 전문가도 두고 볼 만한 책을 내고 싶었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로 갤러리 ‘1984’에서 전시 중인 LP와 가이드북을 소개하는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 최초의 가요 LP 안내서를 낸 그는 “일반인이 봐도 재밌고 전문가도 두고 볼 만한 책을 내고 싶었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절판소장’이라 불리는 사내가 있다.

CD와 카세트테이프, LP레코드와 음악서적, 가수 의상과 트로피, 포스터와 사진, 레이저디스크와 잡지까지, 절판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갖고 싶어 미친 사람. 10만 점의 수집품이 메운 115m² 주택에선 정상 생활이 안 돼 241m²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주거 공간보다 박물관을 닮은 곳에 사는 독한 수집가.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53)는 1990년대 후반 하이텔 AV동호회에서부터 필명 ‘절판소장’으로 통했다. 옛 가요와 희귀 음반의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값을 붙이기 애매한 물건은 그가 매긴 ‘시가’로 유통됐다. 이 사람이 18일 국내 최초로 대중가요 LP레코드 안내서를 펴냈다.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로에서 최 평론가가 건넨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안나푸르나·504쪽)은 성경보다 조금 가벼웠다.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의 초반(왼쪽)과 재반(오른쪽 끝)을 비교한 페이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의 초반(왼쪽)과 재반(오른쪽 끝)을 비교한 페이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이달 말까지 책 관련 LP 80장을 전시하는 카페 겸 갤러리 ‘1984’(02-325-1984)에 들어서자마자 최 평론가의 귀중품이 눈에 들어왔다. 패티김과 고(故) 길옥윤 작곡가가 1966년 12월 10일, 결혼식 하객들에게만 배포한 비매품 12인치 LP, 수형복 차림의 김지하 시인 사진이 표지에 담긴 1970년대 투옥 당시 육성·노래 음반….

“1973년 겨울방학 때였어요. 강원도 강릉에서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인데 동네 형 집에 놀러 갔다 시꺼먼 그것을 처음 봤죠.” 그 형이 재생한 건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였다. “처음 듣는 강렬한 음악에 전율했어요. 근데 그 소리는 라디오가 아니라 동그랗고 빙빙 도는 시커먼 물건에서 나왔죠. ‘대체 이게 뭐지?’”

수집가이자 평론가인 저자의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은 백과사전적 치밀함과 그림책 같은 재미를 겸비했다. 일간지 사진기자 출신인 최 평론가가 직접 찍은 1300장의 레코드 사진이 모든 페이지에 ‘올 컬러’로 담겼다. 발매 이력과 음악사적 가치를 소개한 글이 덧붙었다. 책에 소개된 음반은 318장. 수집가들을 위해 음반마다 초판의 발매연도와 일련번호, 시중 거래 가격을 고려해 저자가 매긴 등급(1등급: 100만 원 이상, 5등급: 5만 원 이상)을 병기했다.

그 존재가 풍문으로만 떠돌던 애드포(신중현이 만든 록 밴드)의 1964년 데뷔앨범 ‘비속의 여인’부터 지난해 나온 조용필의 ‘헬로’까지, 국내 LP의 반세기가 담겼다. “LP 사진 촬영에만 꼬박 석 달 걸렸어요. LP판에 각인된 소리의 골, 동심원을 오롯이 찍어 내는 게 쉽지 않았죠. LP판에 사진 찍는 제 얼굴이 비치니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찍어봤어요.”

저자는 책에서 정황과 자료로 밝힌 국내 최초의 LP인 ‘KBS레코드’ 시리즈(1958년)에서 출발해 2012년 프랑스에서만 발매돼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LP까지 가 닿는다.

“기자 시절 남북정상회담 취재차 평양에 가서도 ‘보천보 전자악단’ 음반을 수소문해 구해 왔다”는 최 수집가를 말리긴 당분간 틀린 듯 보였다.

“지드래곤의 한정판 LP도 구입했어요. LP는 커다란 재킷부터 예술성을 추구하고 시대 상황을 반영하죠.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는 공항이 아닌 LP 표지로 처음 소개됐어요. 지드래곤 같은 아이돌은 LP를 냄으로써 음악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죠. 당분간 음악 자료로 역사를 돌아보는 저술과 전시를 계속할 작정입니다.”

절판되면 섭섭할 책을 ‘절판소장’이 내놨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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