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합격 꿈꾸는 어느 재수생 아빠 “내가 바라는 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11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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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이는 지금 재수 중이다. 목표는 서울 안의 대학에 들어가는 것. 한낱 바람에 그칠 수도 있지만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뜻을 이룰 수도 있다. ○○이는 정시모집에 응시하지도 않고 작년 말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이는 지역에 관계없이 원서를 쓸 수 있는 성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중2 여름방학 때부터 공부대신 '세상 알기'에 들어간 탓에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공부만 해야 하는 재수생활은 무척 힘든 결정이었다. 6번 썼던 수시 모집에 모조리 낙방한 후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재수와 군대라는 두개의 선택지를 내놓았다. 재수를 하려면 기숙학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못 박았다. 시내에 있는 재수학원에 보낼 경우 우리 아이에게는 '재수를 빙자한 유흥'을 묵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바로 군대를 갈 경우 '동대문 원단 상가'에 취직해 자신이 쓰는 모든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고 했다. 대학에 안 갈 거라면 일찍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게 시간 허비를 막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이든 힘든 선택이라 아이는 보름 동안 고민했다. 재수 기숙학원 모집 광고가 신문에 비칠 때 아이와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았다.

"뭐 할 거야?"
"재수할게요."
"왜?"
"대학 가서 사람들에게 인기 좋은 걸 더 크게 쓰고 싶어서요."
아내는 다그쳤다. "너 정말이지. 기숙학원 들어갔다가 못한다고 나오면 그땐 사람도 아니다. 재수를 하고 싶어도 형편이 안돼 재수를 못하는 친구들도 얼마나 많은지 알지. 네 학원비 대기 위해서 집도 내놨어."
"들어가서 열심히 할게요."
목소리가 결의에 차 있는 게 아니어서 찜찜했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놀기는 했지만 대학 입시에 낙방해 실패의 쓴맛을 보고 앞으로 헤쳐 갈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음을 조금은 눈치 챈 아이를 보는 마음은 안쓰러웠다. "재수하는 게 후회스럽지는 않으냐"는 물음에 담담하게 "다 제 탓인데요. 노느라고 공부 안했으니까 시험 못 본 건 당연하죠"라고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이놈이 속을 차린 거야, 아니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거야'라는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소질을 찾는 노력을 나도 저도 하지 않았다. 학교를 파한 후 바로 학원을 순례하며 공부에 짓눌린 도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자연과 벗할 수 있는 시골의 대안학교에서 아이를 키우고도 싶었지만 '아빠와 함께 사는 게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라는 아내의 지적도 맞는 말이어서 여느 가정처럼 '아이와 밀당'하며 초중고 12년을 보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은 한국사회에 '순응'한 채 살아 온 아비 어미가 아이를 위해 과감하게 '틀'을 벗어던지려는 시도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를 권하는 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대학 졸업장이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어떤 준비도 없이 세상에 나간다는 것 역시 아이에게는 힘든 일일 것 같아 '공부하라고' 읍소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아이는 내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갖춰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내내 평행선을 달렸고 그 결과가 '군대 대신 재수'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작년의 13만 명보다 더 많은 재수생들이 대학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시 반영 비율이 높아진 이른바 '좋은 대학'들이 많아지고 의치예과의 정원이 늘어 공부에만 집중하는 재수생들이 유리할 거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귀 기울이는 재수생 부모도 많을 테지만 재수를 통해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만 배워도 좋겠다는 나 같은 부모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졸업식에 참석하러 한 달 만에 집에 온 아이가 "난생 처음 공부를 하며 코피를 흘렸다"며 좋아할 때 "코 후벼서 그런 거 아냐"라고 놀렸지만 아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서울' 한 명 없는 졸업식에 반 아이들은 한 명의 불참자도 없이 모두 참석했다. '쿨'하게 서로의 진로를 묻고 '잘해'라고 격려했다. 또 사회로 바로 나가는 아이들에게는 '돈 많이 벌라'는 덕담도 건넸다.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과 재수를 선택한 아이들을 표정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다. 31년 전 대학진학에 실패한 같은 반 아이들이 뿜어내는 '한숨'을 기억하고 있고, 아예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은 친구들이 걸려 찜찜했던 나의 경험과 확연히 달랐다.

재수는 고3과는 '같지만 다르다'. 좌절과 실패를 맛본 아이들이 스스로 던지는 주사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 또한 조마조마하다.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친가 외가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삼촌 이모 고모를 합하면 재수생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만 줄잡아 수백만 명이다. 밝은 졸업식을 보며 나는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맞게 될 미래를 염려만 했지,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고 내 기준만으로 선택지를 제시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버릴 수야 없겠지만 '믿음'도 가져보자고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적어도 부모의 믿음은 아이들이 1년 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우리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살아갈 그들을 지탱하는 '큰 바위 얼굴'이 될 수 있기에 말이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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