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건축으로 읽어낸 한국사회 코드는 ‘레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빨간도시/서현 지음/304쪽·1만5000원·효형출판

한국 사회는 빨강이다. 씨족부터 일제강점기, 북한, 군사·향락문화, 경쟁, 과열, 월드컵 응원 문화까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빨강으로 수렴된다. ‘빨간도시’는 건축가이자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인 저자가 건축으로 읽어 낸 사회다. 일명 건축사회학이다. 저자는 빨간 코드들이 지금의 건축, 그리고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고 본다.

대표적인 빨간 코드 북한이 남긴 흔적을 보자. 국립 공연장의 크기를 결정하는 변수는 공연 시장 규모가 아니라 북한의 공연장이었다. 체제 경쟁을 하느라 건물도 광장도 북한의 것보다 크고 넓어야 했다. 서울 잠수교는 왜 교각의 높이가 낮아 수시로 물에 잠길까. 폭격으로 무너져도 상판을 다시 얹어 쉽게 복구하기 위해서다.

2004년 평북 용천군 용천역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건축가에겐 다친 사람들이 아니라 무너진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 벽엔 단열재가 없었다. 복구 중인 건물 사진에도 단열재는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단열재는 싸다. 단열재를 넣겠다고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열재로는 전투기를 움직인다는 걱정도 없다.”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내는 담당자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제안이다.

또 다른 빨간 코드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가장 아프게 남아 있는 곳이 초중고교다. 전시 총동원의 시기에 세워진 학교는 예비 병력을 훈련해 내는 곳이었다. 학교의 3대 구성요소인 운동장-구령대-교사(校舍)는 병영의 연병장-사열대-막사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군대를 유지하는 규율 복종 감시와 처벌이 학교의 소프트웨어로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학교부터 일제 청산을 했어야 했다.

요즘 화두 중 하나는 도시 재생이다. 저자는 국회, 정부 청사, 도서관, 문화 공연장 같은 공공시설의 문제점을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도시 재생을 위한 실질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스페인 빌바오 시를 비롯해 도시 재생의 모범 답안인 해외 도시들을 둘러보고 남긴 말은 도시 재생의 원칙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관광객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도시여야 한다. 시민들이 즐겁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의 도시를 만들어야 외부인들에게도 좋은 도시가 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빨간도시#건축#북한#일제강점기#도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