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씨 뿌린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로 꽃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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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온 스테이지’전 & ‘더그 에이트킨-전기 지구’전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의 특별전 ‘백남준 온 스테이지’(위쪽 사진)와 ‘더그 에이트킨-전기 지구’전은 백남준이 창시한 비디오 아트의 발전 궤적을 엿보는 자리다. 단순한 퍼포먼스를 기록한 초기의 비디오 아트가 특정 공간에 맞춰 통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다채널 영상설치작품으로 진화한 과정을 보여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백남준아트센터 제공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의 특별전 ‘백남준 온 스테이지’(위쪽 사진)와 ‘더그 에이트킨-전기 지구’전은 백남준이 창시한 비디오 아트의 발전 궤적을 엿보는 자리다. 단순한 퍼포먼스를 기록한 초기의 비디오 아트가 특정 공간에 맞춰 통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다채널 영상설치작품으로 진화한 과정을 보여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흑백 화면 속에서 젊은 백남준이 뒷짐 진 채 바이올린을 줄에 묶어 질질 끌고 다니는 거리 퍼포먼스를 펼친다. 또 다른 모니터에선 대야에 담긴 먹물로 머리카락을 흠뻑 적신 뒤 바닥에 놓인 종이에 그림 그리는 장면도 보인다. 1961년에 했던 ‘길에 끌리는 바이올린’과 ‘머리를 위한 선(禪)’이란 파격적 퍼포먼스 작품이다. 》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에서 기획한 ‘백남준 온 스테이지’전은 백남준(1932∼2006) 퍼포먼스의 연대별 변천사를 돌아보는 특별전이다. 대중과의 호흡을 중시한 그의 예술정신을 비디오, 자료와 소품을 활용한 입체적 전시로 되살려냈다.

같은 층에서 열리는 ‘더그 에이트킨-전기 지구’전은 지난해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받은 미국 작가 더그 에이트킨(45)의 수상 기념전이자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전기 지구’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8채널 영상설치작품이다. 영화와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가 뒤엉킨 듯 현란한 이미지의 향연을 펼친다.

박만우 관장은 “두 사람은 개방성과 접근성을 중시하면서 미술관 밖에서의 전시를 실험한 점에서 닮아 있다”고 소개했다. 백남준의 예술적 뿌리와 이를 기반으로 꽃피운 미디어아트가 어디까지 왔는지, 그 연결고리와 궤적을 짚어볼 기회다. 내년 2월 9일까지. 2000∼4000원. 031-201-8571

○ 공연과 비디오아트의 융합

‘백남준 온 스테이지’전에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와 길거리 해프닝 등이 모여 있다. 백남준의 제자였던 카트린 이캄이 편집한 13분 길이의 퍼포먼스 모음 영상이 전시 초입에 선보여 주목된다. 바이올린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단숨에 탁자에 내리쳐 부수는 퍼포먼스, 낡은 TV모니터의 내부를 들어내고 그 속에 양초를 집어넣어 ‘TV촛불’을 제작하는 과정도 볼 수 있다.

특별전은 음악에서 출발해 시각 예술로 활동영역을 옮긴 백남준의 관심이 몸과 움직임에 놓여 있음을 엿보게 한다. 그에게 퍼포먼스란 전통적 예술장르를 뛰어넘어 관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호흡하는 자유를 실험하는 공연이었고 비디오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미국 보스턴의 공원에서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백남준의 퍼포먼스도 인상적이다. 그는 부서진 바이올린을 장미꽃 줄기로 연주하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확장하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실천했다.

○ 시간과 공간의 융합

1999년에 선보인 ‘전기 지구’는 미디어 아트를 새 차원으로 올려놓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때만 해도 다채널 영상을 특정한 건축공간에 배치하는 설치작품을 시도한 작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에이트킨은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한 실험정신, 미디어에 대한 통찰력, 퍼포먼스의 다변화 등 백남준의 유산을 물려받은 작가로 꼽을 만하다.

‘전기 지구’는 인류 멸망 이후 유일한 생존자로 남은 흑인 남성의 걸음을 따라가면서 전깃불이 환히 켜진 황량한 도시 곳곳을 비춘다. 4개의 방에 8가지 영상을 선보이는데 구성과 이야기를 해체해 뒤죽박죽 분절된 이미지가 쏟아진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중첩되고 슈퍼마켓 공항 세차장 등 공간이 맥락 없이 연결된 작품은 보는 것을 넘어 ‘통감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영상 이미지의 ‘수용’을 중시한 작가답게 관객은 미로 같은 공간을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각자의 리듬과 생각대로 앞뒤 방을 오가며 스스로 영상을 편집하고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용인=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백남준 온 스테이지#더그 에이트킨-전기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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