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닫히고 안으로만 열린 붉은 벽돌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헬기에 카메라를 장착해 위에서 찍은 붉은 벽돌집. 붉은 벽돌을 촘촘히 쌓아 외부의 시선과 소음은 차단하고 안에 ‘ㅁ’자 마당 쪽으로 통유리창을 설치해 채광과 환기문제를 해결했다. 박공지붕엔 금속 지붕재인 징크를 썼다. 남궁선 사진작가 제공
헬기에 카메라를 장착해 위에서 찍은 붉은 벽돌집. 붉은 벽돌을 촘촘히 쌓아 외부의 시선과 소음은 차단하고 안에 ‘ㅁ’자 마당 쪽으로 통유리창을 설치해 채광과 환기문제를 해결했다. 박공지붕엔 금속 지붕재인 징크를 썼다. 남궁선 사진작가 제공
건축가 정수진
건축가 정수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최근 지어진 ‘붉은 벽돌집’은 목 위까지 단추를 꼭꼭 채운 여자 같다. 붉은 치장벽돌을 8m 높이로 촘촘히 쌓아 올리고 가운데 ‘ㅁ’자로 마당을 둔 중정형 주택인데 작은 창을 최소한으로 뚫어 놓아 밖에서는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의사인 건축주는 어린 두 딸과 전업주부인 아내를 위해 사생활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안전한 집을 원했습니다.”

중정형 설계는 담을 쌓지 못하도록 규정한 판교신도시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과 사생활 보호를 원하는 집주인 사이에서 정수진 건축 에스아이 대표가 내놓은 절충안이다. 그가 판교에 지은 ‘하늘집’(2011년)과 ‘노란돌집’(2012년)도 건물 외벽을 담처럼 둘러 외부의 시선을 막아 놓았다.

“열린 마을 공동체를 조성하는 것이 원래 취지였겠지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들어서면서 이 지침은 이웃 간 분쟁의 씨앗이 돼버렸어요. 여느 단독주택처럼 창을 외부로 낸 집들은 서로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죠.”

붉은 벽돌집 중정. 가운데 마당 쪽으로 난 1, 2층의 통유리창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으로 가릴 수 있다.
붉은 벽돌집 중정. 가운데 마당 쪽으로 난 1, 2층의 통유리창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으로 가릴 수 있다.
요즘 이곳 주택단지를 둘러보면 높은 밀도를 예상하지 못하고 크게 창을 내었다가 주변에 집들이 들어서자 번들거리는 반사유리와 블라인드로 가린 집들이 많다. 불법으로 나무 울타리를 높게 두른 집들도 있다. 새 집을 지으려 하면 옆집에서 “설계도를 보여 달라”고 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31.8m²(약 70평) 규모인 붉은 벽돌집은 외부의 시선과 소음은 차단하되 내부로는 활짝 열려 있다. 마당을 향해 터놓은 통유리창으로는 마당 건너 주방에서 요리하는 아내와 서재에서 책장을 뒤적이는 남편과 아이들이 서로를 볼 수 있다.

이 통유리창과 외벽에 최소한으로 낸 창을 통해 채광과 환기가 이뤄진다. 하늘을 보며 조용히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마당부터 박공지붕이 만들어낸 아이들을 위한 다락방, 마룻바닥에 뒹굴거리기 좋은 아버지의 서재, 간접조명과 천창이 주는 아늑함까지 붉은 벽돌집은 건축주에겐 ‘즐거운 우리 집’이다.

붉은 벽돌집의 외부 전경. 2층 높이의 외벽을 담처럼 두른 중정형 주택은 건축주의 사생활을 완벽히 보호해 주지만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붉은 벽돌집의 외부 전경. 2층 높이의 외벽을 담처럼 두른 중정형 주택은 건축주의 사생활을 완벽히 보호해 주지만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붉은 벽돌집의 ‘폐쇄성’은 건축계에서는 논쟁거리다. 이 논쟁은 판교 주택단지의 지침이 비현실적임을 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건축전문 월간 SPACE 최근호에서 “이웃과의 어울림 따위는 귀찮고, 아파트 생활도 싫고,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우리만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집”이라며 “바깥세상은 일절 관심이 없는 듯 과장된 높은 담 역할을 하는 벽돌로만 고독하게 둘러싸여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은석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붉은 벽돌집의 중정형 설계는 법규를 따르면서도 사생활 보호라는 건축주의 기본권을 찾아준 지혜로운 선택”이라며 “특히 도로가 앞쪽으로 나 있는 집의 경우 소음 피해가 심한 데다 밤이면 집 안이 더욱 잘 들여다보여 큰 문제다. 판교 주택단지를 설계한 이가 (담을 없애면 공동체가 복원된다는) 낭만적인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성남=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