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마케팅에 목매는 한국뮤지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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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배우 1회출연료 3000만원

7월 26일 막을 올린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Tod·죽음) 역을 맡은 김준수.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 그의 출연분은 곧 매진됐다. 제작사는 “마케팅 효과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개런티”라고 하지만 “뮤지컬 업계 전체가 스타 마케팅 경쟁에만 줄달음치다간 뒷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를 맞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MK 제공
7월 26일 막을 올린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Tod·죽음) 역을 맡은 김준수.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 그의 출연분은 곧 매진됐다. 제작사는 “마케팅 효과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개런티”라고 하지만 “뮤지컬 업계 전체가 스타 마케팅 경쟁에만 줄달음치다간 뒷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를 맞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MK 제공
“영업비밀을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당황스러웠다. 현재 한국 영화업계에서 알려진 주연배우의 출연료 최고액은 5억∼6억 원. 여기에 일정 관객 수를 넘길 경우 주어지는 러닝개런티와 투자지분 수입 등이 추가된다. 자신의 출연료를 스스로 밝히는 배우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비밀’은 아니다.

뮤지컬 주연배우 출연료는 어느 정도일까. 숫자로 된 답변은 드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배우의 개인정보입니다.” “소속 매니지먼트사에서 질색할 질문이네요.” “출연계약서에 개런티 관련 비밀 엄수 조항이 있습니다.” 날 선 대답이 이어졌다.

소속 매니지먼트사에서 뮤지컬 배우 몸값에 대한 물음에 질색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이미 3년 전 조승우와 김준수의 회당 출연료가 1800만 원과 3000만 원으로 알려진 바 있다. 김준수가 출연하는 뮤지컬 ‘엘리자벳’의 제작사 EMK 임수희 홍보팀장은 “확인해줄 수 없지만 틀렸다고 부인할 수도 없는 액수”라며 “출연자들의 개런티가 전반적으로 최근 2, 3년 새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최근 발표된 대형 뮤지컬 제작비는 1000만∼2000만 달러(약 110억∼220억 원). 라이선스를 사들여 공연하는 같은 작품의 한국 버전 제작비는 그와 비슷한 100억∼250억 원 정도다. 티켓 가격도 5만∼15만 원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두드러지는 것은 주연배우의 출연료 격차다. 올해 초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내한공연을 이끈 브로드웨이의 ‘원조 팬텀’ 브래드 리틀은 회당 300만 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혜영 CJ E&M 공연마케팅팀장은 “올해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화제의 신작 ‘킹키 부츠’ 주인공들이 회당 200만∼300만 원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3년 전 금액이 유지됐다 하더라도 한국의 뮤지컬 주인공이 많게는 미국보다 회당 10배에 이르는 몸값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제작사들은 “관객 동원 효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몇몇 스타 배우의 개런티에는 공연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임 팀장은 “김준수 씨가 출연하는 횟수는 전체의 25%다.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다 팔려 나갔다”고 말했다. 양 팀장도 “캐스팅 소식만 알려도 수많은 인터넷 매체에서 곧바로 작품 참여 사실을 전해주는 스타들은 어떤 매체보다 큰 광고 효과를 안겨 준다”고 했다.

문제는 ‘누구는 얼마를 받는다는데 나도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심리 때문에 전체 출연료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연제작사 쇼노트 송한샘 이사는 “스타급이 아닌 아이돌도 요즘 대뜸 500만∼600만 원을 이야기한다. 제작사로서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전체 제작비가 오르면서 시장이 온전히 성장하기도 전에 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당 10만 원 안팎의 출연료를 받는 앙상블 배우의 박탈감에 대한 우려도 있다.

관객 수는 완만하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작품 공급이 급격히 늘면서 제작사들이 근시안적으로 스타 마케팅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스타 배우만 한 ‘미끼’가 없기 때문이지만, 그만큼 작품의 질적 완성도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스타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관객을 ‘뮤지컬 관객’으로 볼 수 있느냐는 시각도 있다.

유인택 서울시뮤지컬단장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이라도 스타가 없으면 망한다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배우 몇몇이 뒤흔들게 된 한국영화 시장의 전철을 뮤지컬도 똑같이 따라 밟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뮤지컬#스타마케팅#출연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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