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선 목사 “헐리고 버려지고… ‘처음 예배당’ 홀대 안타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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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 펴낸 강화 교동도 교동교회 구본선 목사

12일 구본선 교동교회 목사가 1933년 세워진 교동교회의 옛 예배당 앞에 섰다. 현판 양쪽엔 출입문이 두 곳 이라 남녀가 따로 사용했다. 교동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2일 구본선 교동교회 목사가 1933년 세워진 교동교회의 옛 예배당 앞에 섰다. 현판 양쪽엔 출입문이 두 곳 이라 남녀가 따로 사용했다. 교동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호우주의보가 내린 12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교동교회 구본선 목사(48)를 만났다. 교동도는 강화군과 배로 불과 15분여 거리에 있는 섬이다. 육지를 잇는 다리는 내년에 완공된다. 구 목사는 2011년 1년간 육지를 오가며 7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예배당 24곳을 누볐다. 발품 팔아 쓴 ‘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홍성사·사진)은 이달 초 출간됐다. 》

책은 기독교인이자 건축을 전공한 장석철 사진가가 24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에 이야기를 더해 만들어졌다. 출판사는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에게 먼저 부탁했지만 이 교수는 구 목사를 추천했다. 구 목사와 ‘처음 예배당’은 인연이 있다. 책 속엔 담기지 않았으나 교동교회는 1899년 설립됐다. 1933년에 세워진 예배당도 지금 교회 인근에 보존돼 있다.

1998년 5월 교동도에 들어온 구 목사는 다음 해 ‘교동선교 100년사’를 동료 목사들과 집필하며 교회사에 눈떴다. 남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하기 좋아해 강화군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도 잘 읽힌다.

‘할아버지가 세우고 아버지가 지키던 교회를 은퇴한 아들이 보듬고’ 있는 경북 봉화군 척곡교회(1909년)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기독교도로 대한제국 관리였던 김종숙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봉화로 내려와 작은 예배당과 학교를 세웠다. 스스로 목회자가 돼 신앙을 전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아들 김운학은 교회 1대 면려회장(기독교도 청년단체)을 맡아 교회를 지켰다. 종손 김영성 장로는 인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하고 교회로 내려왔다. 교회를 부탁한 아버지의 유언에 따른 것. 지금도 주일이면 담임목사 부부와 김 장로 부부, 시골 노인 네댓 명이 조촐한 예배를 올린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강화읍성당(1900년) 천주성전(위). 천주성전 내부의 기둥과 대들보는 백두산 적송으로 만들었다. 장석철 사진가 제공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강화읍성당(1900년) 천주성전(위). 천주성전 내부의 기둥과 대들보는 백두산 적송으로 만들었다. 장석철 사진가 제공
구 목사는 “처음 예배당엔 교회 역사와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예배당이 사라지면 그 역사도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 목사의 소망과 달리 ‘처음 예배당’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교세를 확장한 교회는 망설임 없이 오래된 예배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체육관을 닮은 대형 건물을 세운다. 1930년대 이전 교회 건물은 전국에 30곳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구 목사는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서울의 한 빌딩으로 자리를 옮긴 교회는 빌딩 옆 역사 깊은 예배당을 창고처럼 방치해뒀습니다. 교회가 옛 예배당을 내팽개치니 교인들은 예배당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지방의 한 교회에선 1930년대 만들어진 예배당을 교인들이 먼저 허물자고 나섰습니다. 목사가 교인을 설득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섬마을 작은 교회 목사가 예배당 취재를 위해 자주 뭍에 나가려니 제약도 많았다. 구 목사는 예배가 없는 요일을 택해 길어야 2박 3일 일정으로 예배당을 답사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타고난 ‘길치’인지라 섬 밖을 벗어나면 직접 운전을 할 수 없었지만 동료 목사들이 대신 운전대를 잡아줬다.

구 목사가 5년만 버티자고 아내, 두 딸과 함께 섬에 온 지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그는 직접 9인승 승합차를 몰아 고령의 신도들을 교회로 모셔온다. 90대 할머니 신도는 70대 신도가 차에 오르면 “어린것들이 목사님을 부려먹는다”고 ‘핀잔’도 한단다. 그는 평균 연령이 70세인 신도 25명을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95세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예배를 거른 적이 없고 88세 할머니는 건강이 나빠 몇 년째 외출을 못해도 교회 헌금은 꼭 전한단다. 먼저 하늘로 간 신도 12명은 가슴에 묻었다고 했다.

교동교회 십자가엔 도시의 교회와 달리 붉은 조명이 없었다. 인위적인 빛을 내지 않아도 빛이 나는 교회였다.

교동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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