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에서 有’ 문화 투자… 영국경제 벌떡 세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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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창조문화’의 교본 ‘Creative Britain’

조앤 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해리 포터’.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4억50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영화도 8편이나 만들어졌다. 동아일보DB
조앤 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해리 포터’.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4억50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영화도 8편이나 만들어졌다. 동아일보DB
혼자서 딸 하나를 키우던 이혼녀 조앤 K 롤링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는 1997년 어린 시절 두 살 아래 동생에게 자신이 상상해 들려주던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로 결심했다. 여러 출판사를 알아봤지만 무명의 작가에게 기회를 주는 곳은 없었다. 어렵게 스코틀랜드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권을 냈다. ‘해리 포터’는 이후 67개 언어로 번역돼 4억5000만 부 이상 팔렸다. 예술위원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해리 포터’도 없었다.

조선업이 번창했던 영국 항구도시 리버풀. 1960년대 후반 도시 경제의 핵심이었던 조선업이 몰락하며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곳 출신 록 밴드 비틀스가 처음 공연했던 캐번 클럽,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등을 관광상품화하며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쥐들로 들끓던 쇠락한 도시는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25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해리 포터와 리버풀의 성공은 ‘크리에이티브 브리튼(Creative Britain·창의적인 영국)’으로 불리는 영국 정부의 문화육성 정책의 결과물이다. 박근혜정부는 출범과 함께 ‘미래의 먹거리’로 문화를 내세웠다. 문화융성은 경제부흥, 국민행복,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더불어 정부의 4대 정책기조 중 하나다. 이달 안으로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도 출범한다. 정부 문화융성의 주요 참고서가 바로 크리에이티브 브리튼 정책이다.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은 1997년 출범한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시작됐다. 블레어 정부는 침체에 빠져 있던 제조업을 대신할 먹거리로 문화산업에 주목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 크리스 스미스가 쓴 책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은 그 상세한 전략을 전달한다. 방송, 광고, 디자인, 공연, 출판 등을 영국 산업의 주력으로 삼겠다는 청사진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정책 방향에 따라 영국 정부는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를 신설하고, 디지털 콘텐츠 육성 실천계획 등 8개 부문 26개 정책 과제를 시행했다. 2500만 파운드(약 432억 원)를 투입해 아동, 청소년에게 매주 5시간 이상 연극 관람 등 문화교육을 실시하는 ‘재능 발견’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방송, 영화 등의 분야에서는 매년 5000명 이상의 견습생이 유입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복권 수익으로 만들어진 국립과학기술예술기금은 매년 300만 파운드(약 52억 원)를 쏟아 부어 창의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창조적 혁신가 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7년 영국의 TV, 라디오 프로그램 수출액은 14억 파운드(약 2조4000억 원)에 달했다. 1998년 영국에서 처음 방영된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바라는가’는 2005년까지 106개국에서 현지 버전으로 만들어져 16억 파운드(약 2조7000억 원)를 영국에 안겨줬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 등 다양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도 이 시기부터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영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방송 포맷 수출국이 됐다.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1998년 자신의 이름을 딴 상점을 홍콩에 5개, 뉴욕과 파리에 각각 1개를 여는 등 브랜드를 세계화했다. 현재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올리는 유럽 디자이너이다.

런던 웨스트엔드 지역의 뮤지컬도 세계를 제패했다.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같은 세계 4대 뮤지컬이 모두 이곳에서 생겨났다. 웨스트엔드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연간 15억 파운드(약 2조6000억 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 영화 등 다양한 축제를 여는 에든버러는 유럽을 대표하는 축제 도시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문화산업은 영국 경제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1997년 2만3000달러(약 2600만 원)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문화융성 정책을 시행한 지 6년 만인 2003년 3만 달러를 돌파했다. 문화산업에서만 일자리 40만 개가 새로 생겼다. 창조산업의 부가가치는 2006년 기준 573억 파운드(약 98조 원)로 전체 국민소득 대비 6.4%에 달했다. 영국 창조산업의 국민소득 기여도는 5.8%로 캐나다(3.5%) 미국(3.3%) 프랑스(2.8%)보다 높다.

김재범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는 ‘창의적 영국’이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핵심은 크리에이터들이 창조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운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살리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준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문화산업과 정보통신산업 등을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문화도시#크리에이티브 브리튼#미래의 먹거리#박근혜정부#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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