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版 ‘1812년’ 서곡, 러시아 국가와 다른 선율이… 알고보니 글린카의 ‘영광송’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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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음원제공 낙소스>
<음원제공 낙소스>
1980년대 초반이니 30년쯤 전의 일인가 봅니다. FM에서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러시아가 나폴레옹군을 패퇴시킨 사건을 기념한 작품으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와 러시아의 행진곡 선율이 대결하다가 행진곡이 제정(帝政) 러시아의 국가와 얽히면서 장려하게 끝을 맺는 곡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못 들어본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앗, 러시아 국가가 나와야 하는 부분인데, 선율이 완전히 바뀌었네. 그렇다면?… 아까 아나운서는 소련 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한다고 했다. 소비에트의 관리들이 혁명 전 러시아 국가에 불쾌감을 느껴 다른 선율로 대치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건 소련 국가 아닐까?’ 등골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철의 장막’ 뒤의 많은 것이 금기시되던 때입니다. ‘라디오 PD가 곤경을 겪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이 흘러 88올림픽이 열리고 더이상 공산권 국가가 금기가 아닐 때 소련 국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비에트판 ‘1812년’ 서곡에 실린 그 선율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의문은 그러고도 한참 뒤 인터넷 검색으로 풀었습니다. 그 선율은 소련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 민족음악의 아버지 미하일 이바노비치 글린카(1804∼1857)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에 나오는 ‘영광송’이었습니다.

후배 작곡가인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에 자신의 선율이 한때 차용된 일을 알았다면 글린카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더 기막힌 일은 ‘이반 수사닌’은 원제가 ‘차르에게 바친 목숨’이었을 정도로 제정 러시아에 충성을 표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선율을 바꾸어 넣을 거면 왜 이 작품을 사용했는지 납득하기 힘듭니다.

차이콥스키가 크림전쟁 전상자 원호 연주회를 위해 작곡한 ‘슬라브 행진곡’에도 제정 러시아 국가가 들어가지만 소련 시절에는 ‘이반 수사닌’의 ‘영광송’을 넣어 연주했다고 합니다. 음악 작품도 이념에 맞춰 손발이 잘려나가는 시대였습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를 제외한 세계 곳곳에서 ‘1812년’ 서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한 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달 15일 성시연 지휘로 열린 서울시향 강변음악회에서 이 곡이 축제 분위기를 돋웠습니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김대진 지휘 수원시향 ‘그레이트 컴포저 시리즈-차이콥스키’ 연주회에서는 ‘슬라브 행진곡’이 차이콥스키 교향곡 2번, 김규현이 협연하는 피아노협주곡 1번과 함께 연주될 예정입니다. 물론 원곡 그대로 ‘제정 러시아 국가 버전’입니다. blog.daum.net/classicgam/2

유윤종 gustav@donga.com
#차이콥스키#1812년#글린카#영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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