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장벽 넘어선 가슴속 울림… 고은 詩, 낭트의 밤 적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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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한국축제 행사서 ‘시 낭송회’ 열어
高 시인 “인간이 있는한 시는 안죽어”

28일 저녁 프랑스 서부 대서양 연안의 도시 낭트에서 열린 시낭송회의 고은 시인(왼쪽에서 두 번째)과 그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낭송한 배우 멩동 로랑 씨(왼쪽). 한복 차림의 여성은 거문고 연주자 이정주 씨. 이날 낭송회는 27일부터 낭트 시 전역에서 한국을 주제로 열린 문화예술축제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됐다. 낭트=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28일 저녁 프랑스 서부 대서양 연안의 도시 낭트에서 열린 시낭송회의 고은 시인(왼쪽에서 두 번째)과 그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낭송한 배우 멩동 로랑 씨(왼쪽). 한복 차림의 여성은 거문고 연주자 이정주 씨. 이날 낭송회는 27일부터 낭트 시 전역에서 한국을 주제로 열린 문화예술축제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됐다. 낭트=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이 아름다운 도시에 경의를 표합니다. 동아시아의 시를 몇 편 지닌 한 아이가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구상의 원근법을 뛰어넘어 하나가 됩니다.”

28일 오후 8시 반(현지 시간) 프랑스 낭트 시 문화공간인 코스모폴리스 연단에 오른 고은 시인(80)은 짤막한 인사와 함께 바로 시 낭송을 시작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낭송회는 물 흐르듯 이어지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시인은 잔잔하게, 때론 우렁차게 포효하며, 푸른 눈의 청중을 사로잡았다. 각본도 무대장치도 없었지만 그가 시집 ‘순간의 꽃’ ‘속삭임’ ‘뭐냐’ 등에서 고른 30여 편을 읽는 동안 현지 독자와 교민 등 80여 명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경청했다. 사이사이 삽입된 이정주 씨의 거문고 연주도 빛을 발했다.

이날 행사는 낭트 지역 한인과 현지인이 지난해 결성한 ‘한국의 봄’ 협회에서 기획한 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 낭송회에서는 시인이 작품을 먼저 읽으면 프랑스 배우 멩동 로랑 씨가 번역본 시를 프랑스어로 따라 읽었다. 한국 시인의 순수한 열정과 프랑스 배우의 빼어난 표현력은 완벽한 호흡으로 큰 감응을 이끌어냈다.

관객 리타 바두라 씨(32·로리앙 리테레르 기자)는 “시를 들으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류의 보편적 감성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기회를 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에 시인은 “내 생각과 일치한다”며 화답했다. “나만 시인이 아니라 이 방에 있는 모든 분이 시인이다. 헛된 말이 아니다. 60년 동안 시인 생활 하면서 깨달은 진실이다. 지구가 있는 한, 인간이 있는 한 본성으로서 시는 죽지 않을 것이다.” 로랑 씨는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시인의 에너지에 전염되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최근 몇 년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25개국 말로 시집이 번역된 시인. 그는 3월부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머물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제시인대회에 참석하고 유럽 전역을 다니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전혀 지치지 않은 표정으로 석 달 동안 100편 넘는 시작 메모를 축적했다고 자랑했다.

“내게 많이 쓰라는 책무를 준 것 같다. (자기 가슴을 툭 치며) 쓰기를 기다리는 게 줄 서 있다. 그래서 죽을 수가 없어…. 그게 내 존재 이유니까.”

낭트=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프랑스 낭트#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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