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열불난다 이 며느리… 근데 왠지 씁쓸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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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김숨 지음/320쪽·1만3000원/현대문학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름만 들어도 왠지 불편할 것만 같은 미묘한 관계. 옛날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잡고 살았다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며느리 전성시대냐고?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현실적으로 말해 발언권이 센 사람은 보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돈이 있어야 돈독한 가족의 정(情)도 생기는 게 요즘 한국사회다.

팍팍한 살림살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안감. 서민들의 지난한 삶은 고부 관계까지 변형시켰다. 김숨(사진)의 장편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며 가정을 위기로 몰고 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립을 날카롭게 그렸다. 현대문학 제공
팍팍한 살림살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안감. 서민들의 지난한 삶은 고부 관계까지 변형시켰다. 김숨(사진)의 장편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며 가정을 위기로 몰고 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립을 날카롭게 그렸다. 현대문학 제공
소설은 요즘 고부(姑婦)관계를 집중 조명한다. ‘여자’로 불리는 시어머니와, ‘그녀’로 불리는 며느리. 며느리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파출부로 일하며 아들(‘그녀’의 남편)을 고작 3류 대학에 보낸 시어머니를 경멸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잘난 것도 아니다. 그녀는 전문대를 겨우 졸업했으며 홈쇼핑 전화상담사로 일한다. 결혼을 신분상승의 한 기회로 노렸던 그녀지만 일이 꼬여 변변치 못한 직장을 가진 남편과 결혼한다. 결혼 후 대출을 받아 재개발 유력지라는 곳에 빌라를 샀지만, 개발은 물 건너가고 집값은 떨어진다.

흔히 볼 수 있는, 너무 평범해서 드라마 소재로도 쓰이지 못할 이 가족의 얘기를 작가는 지독히 물고 늘어진다. 일상적인 사물도 현미경을 들이대면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되듯이, 소설은 자신의 모든 불행을 시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며느리, 그리고 며느리를 대신해 가사와 육아 부담을 모두 짊어지면서도 변변히 대꾸 한번 못하는 어눌한 시어머니의 대립을 촘촘히 짚어낸다.

사실 소설을 읽다 보면 열불이 여러 번 난다. 며느리는 아들을 낳자, 자신의 필요에 의해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친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약속한 수고비를 미루거나 줄이고, 자신의 아이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어머니에게 무시와 무안, 무응대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급기야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우리는 종(種)이 다르다”라고까지 단언한다.

이 며느리가 정신병자일까. 물론 과장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우리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 내내 씁쓸했다. 자식 양육과 교육에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부모에게는 애정을 덜 쏟는 게 현실 아닌가. 자녀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자식이 바꿔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기에 “아들이 나를 비롯해 가족 누구도 닮지 않는 돌연변이였으면 좋겠다”는 며느리의 바람은 탈출구 없는 지난한 현실에서 외치는 절규처럼 들린다. 이때쯤이면 기괴했던 며느리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수돗물이 단수된 집에서 침이 말라가는 구강건조증을 가진 시어머니, 단수와 시어머니의 병에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며느리를 다루는 현재와 이들의 과거 모습을 오가며 소설은 진행된다. 타들어가는 갈증과 단수된 집에서 나오는 온갖 악취가 밀도 있게 부풀어 오르며 그로테스크한(기괴한)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존엄성을, 또 그들과 더 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으면 했다”는 게 작가의 집필 의도. 소설 속 가정처럼 우리 집도 어딘가 ‘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펴보자. 쩍쩍 갈라져, 부스러지기 전에.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며느리#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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