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별아 “먼 옛날 연인들의 지고지순했던 이야기 전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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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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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0년 맞아 신작장편 ‘불의 꽃’ 낸 소설가 김별아

‘조선 여성 3부작’을 집필 중인 김별아 소설가. 조선 왕실의 동성애 스캔들을 다룬 ‘채홍’에 이은 두 번째 신작 ‘불의 꽃’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순애보를 다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조선 여성 3부작’을 집필 중인 김별아 소설가. 조선 왕실의 동성애 스캔들을 다룬 ‘채홍’에 이은 두 번째 신작 ‘불의 꽃’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순애보를 다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참수를 앞둔 유녹주는 저잣거리에서 돌을 맞는다. 왈칵 울음이 치밀어 오른 여인은 계집아이 시절의 기억으로 빠져드는 장면.

역사에 가려진 여성을 발굴해 그들의 삶과 사랑을 전해온 작가 김별아(44)의 신작 ‘불의 꽃’(해냄·사진)은 이렇게 시작된다.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유 씨 부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조선 여성 3부작-사랑으로 죽다’의 ‘채홍’(2011년)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조선 왕실의 동성애 스캔들을 다룬 전작처럼 ‘불의 꽃’도 15세기의 조선시대가 배경이다. ‘불의 꽃’은 조선왕조실록에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 씨가 지신사(도승지) 조서로와 통간(通姦·간통)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라는 짧은 글귀를 모티브로 삼았다.

작가는 도덕적인 통제가 강했던 15세기 문치주의 체제 속 여성들의 현실에 주목했다고 강조했다. “16세기에는 딸에게도 재산을 분할하는 등 상속 개념이 생겼지만 세종 때는 거열, 능지처참형으로 벌한 기록만 60여 건에 달해요. 세종조차 과도한 징계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을 뒤에 했을 정도였죠. 반면 조선시대에 통간사건으로 처형된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실제 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은 유 씨가 참형당한 반면 조서로는 귀양을 가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조서로는 20년 남짓 더 살았다.

‘불의 꽃’은 김별아의 열한 번째 장편소설이자 역사를 소재로 한 여덟 번째 작품. 그는 사료를 바탕으로 큰 줄기를 그렸지만 행간을 읽어가며 맥락을 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혼불’의 최명희 선생님은 작품의 캐릭터를 만들 때 생년일시를 정하고 사주까지 봤다고 합니다. 저는 가족 관계에 주목해 인물의 성격을 분석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엄한 아버지와 고집 센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조서로는 부모를 잃은 뒤 자신의 집에 맡겨진 녹주와 좋은 벗이 된다. 둘은 각자 다른 배필과 결혼한 뒤에도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서로에게 위로 받았던 경험과 애정 때문에 상대를 잊지 못한다.

소설은 비교적 선정적인 소재인 간통을 다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사랑의 순정을 표현하기 위해 유려하고 정제된 언어로 서술됐다. 의성어와 의태어, 순우리말이 많다. “역사는 교훈이 아니라 위로라고 생각해요. 지고지순한 과거 연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유행가 가사처럼 목숨 바쳐 사랑한다고들 하지만 그저 보통의 사랑만 범람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1993년 ‘닫힌 문 밖의 바람 소리’로 등단한 20년차 작가로서의 고민도 털어놨다. “문학의 위기란 말은 지겹게 들었지만 소통은 이어지죠. 매체와 환경이 바뀌어서 방식이 변하고 있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쓰고 싶어요. 쉽게 쓰기가 오히려 쉽지 않더라고요.”

그는 ‘미실’(2005년)이 2009년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로 크게 재조명됐지만 작가생활 20년의 절반은 거의 무명(無名)이었다고 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저만이 할 수 있는 문학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어요. 문학은 (제게) 익숙해질 수 없는 장르, 필승이 아닌 필패의 분야 같아요.”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소설가 김별아#불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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