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김화성 전문기자의&joy]구례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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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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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매화꽃 흐드러진 꽃동네 꽃대궐… 어딜 가도 꽃멀미

샛노란 산수유 꽃이 다발로 핀 구례산동면 현천마을. 마치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마을 큰길과 고샅길에 산수유 꽃이 꽃대궐을 이뤘다. 마을 어귀 늙은 둥구나무는 아직 맨살을 드러낸 채 가부좌를 틀고 있고, 마을 뒤란 대숲에선 참새 떼가 포르르 포르르 부산하다. 마을 앞 시냇물 소리 시원하고 우렁차다. 마루 밑 누렁이는 살가운 봄햇귀에 졸고 있고, 한낮 수탉 우는 소리 아득하기만 하다. 산수유축제는 오늘부터 31일까지 펼쳐진다. 지난주부터 열리고 있는 광양매화축제도 같은 날 끝난다. 구례=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샛노란 산수유 꽃이 다발로 핀 구례산동면 현천마을. 마치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마을 큰길과 고샅길에 산수유 꽃이 꽃대궐을 이뤘다. 마을 어귀 늙은 둥구나무는 아직 맨살을 드러낸 채 가부좌를 틀고 있고, 마을 뒤란 대숲에선 참새 떼가 포르르 포르르 부산하다. 마을 앞 시냇물 소리 시원하고 우렁차다. 마루 밑 누렁이는 살가운 봄햇귀에 졸고 있고, 한낮 수탉 우는 소리 아득하기만 하다. 산수유축제는 오늘부터 31일까지 펼쳐진다. 지난주부터 열리고 있는 광양매화축제도 같은 날 끝난다. 구례=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그대 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무엇에 두었는가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 안에 한 그루 푸른 나무를 숨쉬게 하는 일이네
때로 그대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는가
낮은 산길과 들녘, 맑은 강물을 따라
사람의 마을을 걷는 길이란
살아온 발자국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네
숲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생명의 지리산을 만나는 길
어찌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대 안에 지리산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일
껴안아준다는 것이지
사랑한다는 것이야
어느새 가슴이 열릴 것이네
이윽고 눈앞이 환해질 것이네
그대가 바로 나이듯
나 또한 분별을 떠나 그대이듯이
그대와 나 지리산이 되었네
그대와 나 지리산둘레길이네

<박남준 ‘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방광마을의 매화-산수유꽃 터널.
지리산둘레길 방광마을의 매화-산수유꽃 터널.
햐아, 참 좋다! 봄날 지리산자락은 어딜 가도 꽃 멀미가 난다. 섬진강 매화는 이미 흐드러져 슬슬 향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산수유 꽃은 절정을 지나 색깔이 좀 푸석해졌다. 구례읍 서시천 따라 노란 개나리 물결이 살가운 바람에 수시로 일렁인다. 목련 꽃망울과 벚꽃망울이 탱탱 불어터졌다. 봄비가 한번쯤 옹알이를 하며 내려주면 금세 폭죽처럼 터질 것이다.

화엄사 각황전 옆 진홍빛 늙은 매화도 우우우 꽃을 열고 있다. 황현(黃玹·1855∼1910) 선생의 매천(梅泉)사당에도 하얀 매화꽃이 다투어 피었다. 사당마루 옆 백매의 향기는 맑고 은은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다.

꽃이 예년보다 일주일쯤 빨리 터지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선 2주일이나 빠르다. 도대체 꽃의 마음을 누가 알까. 구례 산수유축제(3월 29∼31일)는 꽃떼 뒤꽁무니를 잡은 셈이 됐다. 광양매화축제(3월 23∼31일)도 절정기에서 일주일쯤 늦었다. 과연 하동벚꽃축제(4월 6, 7일)는 때맞춰 열리게 될까. 벚꽃이 그때 우르르 피워줄까.

꽃은 이제 섬진강 길섶을 떠나 지리산 자락을 타고 위쪽으로 진군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봄산 봄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숲도 땅도 하늘도 바람도 모든 게 살갑다. 가는 곳마다 꽃동네 꽃대궐. 어찔어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햇귀가 다북다북하다.

뿌윰한 연무가 산허리를 띠처럼 감고 있다. 하늘이 까무룩하다. 논두렁의 뻣뻣하고 완강한 흙덩이가 으늑하고 녹작지근하게 풀어졌다. 푸르스름한 개불알꽃이 오종종 단추처럼 돋았다.

지리산둘레길 구례구간(오미마을∼밤재 52.5km)은 기름이 자르르하다. 노란 산수유 꽃과 맑은 매화꽃이 앞 다퉈 반긴다. 농부들은 저마다 들판에서 농사 채비에 바쁘다. 한적한 동네고샅엔 붉은 동백꽃모가지가 통째로 부러져 어지럽다. 벌들이 잉잉거리며 돌담길 노란 산수유 꽃에 코를 박고 있다.

구례 구간은 남원에서 넘어오는 밤재(490m)에서 시작해도 되고, 구례토지면 운조루(雲鳥樓)에서 출발해도 된다. 밤재에서는 내리막이고, 운조루에서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운조루는 남한 3대길지의 하나. 이른바 ‘금가락지 명당’이다. 앞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그 너머엔 다섯 봉우리가 우세두세 서 있다. 밤재 아래 현천마을엔 산수유 꽃이 난리법석이다. 사진작가들이 골목마다 카메라를 들고 종종걸음이 한창이다. 동네 뒤란의 대숲 바람소리가 쏴아! 쏴아! 시냇물 소리 같다.

‘섬진강 자락 타고 내려온 물소리/시나브로 젖어드는 밤/어디서든 꽃 피고 지고 반복되지만/나의 꽃은 단 한번/붉은 기운 속에 혼절한 사랑이었으면 한다’ <황구하의 ‘운조루의 봄밤’에서>


▼ 지리산 농사과정 중계 ‘고추가 영근다’ 같은 게 톱뉴스 ▼

김서곤 지리산닷컴 대표


지리산닷컴은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이버텃밭’이다. 1996년 김서곤 대표(52·사진)가 다짜고짜 도메인(www.jirisan.com)을 확보한 것도 ‘지리산 사이버공동체’를 꿈꿨기 때문.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농부가 농사짓듯 무엇을 담을 것인가부터 헤아렸다. 그것을 옹골차게 운영할 사람도 끈질기게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문을 열었다. 현재 회원은 1만∼1만5000명. 지리산닷컴 사무실은 바로 운조루가 있는 오미리에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모든 사람에게 시시각각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농부가 땅 고르고, 씨 뿌려 거둬들이는 일만큼 중요한 게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농사짓는 모든 과정을 생중계하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저절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보이면, 소비자는 쌀 한 톨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먹는지 보이면 농부도 정성들여 농사짓게 됩니다. ‘고추가 영글고 있다’ ‘자기 밭에 몰래 농약 친 농부 이야기’ 등 우리에겐 모든 게 엄청난 뉴스입니다.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줍니다.”

김 대표는 구례에서 나고 자랐다. 한때 서울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도쿄대에서 7년 동안 공부했다. 2002년 고향에 돌아와 11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지리산자락 5ha 땅에 산마늘, 곰취, 엄나물, 표고, 두릅 등을 유기농으로 키운다. 농약을 안 치니 양배추에 하얀 나비가 너울너울거리며 날아다니는 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란다. 그의 부인은 그의 든든한 농사꾼 동지. 우리 밀 농사를 짓고, 우리 밀 국수와 빵 만드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귀향이다, 삶의 전환이다, 뭐 그런 거창한 가치를 내세우기 싫습니다. 뭐든 커지면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이윤보다는 ‘사람과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지난해 ‘맨땅에 펀드’라는 것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한 계좌 30만 원씩 100계좌를 모집했는데 일주일 만에 채워졌지요. 하지만 한 해 해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334계좌를 모집했습니다. 밀, 콩, 감 등 펀드 직영농지도 있습니다. 투자자 밥상에 오를 작물을 기르는 것은 기본이지요. 유기농은 어차피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펀드를 모집할 때 아예 ‘제정신으로는 결코 투자할 수 없는 뽕펀드’ ‘하늘에 수익률을 맡기는 무책임 펀드’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펀드’라고 밝혔습니다. 전 ‘포스트(post) 농협’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리산닷컴 운영자는 김 대표의 2년 후배 권산씨(50). 그는 닷컴에선 ‘마을이장’으로 통한다. 그는 혼자서 운영자, 편집자, 기자 역할을 한다. 그는 구례로 귀촌한 도시 출신 웹 디자이너. 그의 눈엔 천지가 기삿거리다. 매일 아침 지리산과 지리산자락 사람들의 모습을 배달한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집’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이란 책까지 선보였다.

김 대표 부인은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 ‘산에 사네’를 운영한다. 천하명당 운조루 바로 옆집이다. 방 3개의 12명 규모(1인 2만 원). 아침밥은 주인장과 반드시 같이 먹어야 한다.(www.sanesane.org·061-781-7231)
▼ 입 안 쩍쩍 달라붙는 가오리찜에 막걸리 한잔 ▼

지리산사랑방 구례 ‘동아식당’


구례에 가면 스르르 입 안에 침부터 고인다. 동아식당 갈 생각에 마음이 달뜬다. 말랑말랑 꼬들꼬들 고소한 가오리찜에 살짝 데친 부추를 곁들여 먹으면 금세 입 안의 군내가 가신다. 막걸리 한 사발에 물렁뼈 오도독 씹는 맛이 그만이다. 생두부, 검은 콩자반, 멸치조림, 콩나물, 배추무침, 잘 익은 김장김치, 무말랭이, 치즈를 혀로 녹여 먹는 맛의 손바닥만 한 계란프라이…. 밑반찬도 하나같이 정갈하다. 족발탕과 조기탕도 술꾼들에게 인기다. 깊고 시원하면서도 목젖이 칼칼한 김치찌개 맛은 또 어떤가.

“지난해 11월 22일 이쪽으로 옮겼어. 그곳에서 10년 동안 정이 들었는데, 집주인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다고 하니 나올 수밖에. 단골손님들이 탁자와 의자도 옮겨주고, 주름진 슬레이트에 쓴 흑 글씨 옛날 간판도 떼어다가 붙여줬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어떤 손님들은 옛날 그곳이 그립다고 하지만 나는 새로 이사 오니 주방이 편해서 좋아.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로 왔으니 옛 손님들이 찾기도 쉽고….”

김길엽 할머니(66·사진)는 구례 토박이. 25년 동안 오이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다 11년 전 빚보증을 잘못 서 쪽박 차는 바람에 식당을 하게 됐다. 이젠 자식들(2남 2녀)도 다 키우고 다시 일어섰다. 광주에서 직장 다니는 막내아들이 올 서른넷.

“주위에서 이젠 편히 쉬라고 하지만 난 이 일이 즐거워. 먼 곳에서 찾아주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행복해. 그래서 일 년에 단 하루도 문을 닫을 수가 없어. 미원(조미료)도 전혀 안 쳐. 그거 치면 우리 집 손님들은 음식을 못 잡수시거든. 지금 여기도 다 해봐야 30명이나 앉을까. 얼마 전 서울에서 80명이 오신다는데 못 받는다고 했어.”

옛 동아식당은 영락없는 허름한 시골 주막집이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만고풍상의 슬레이트집. 하지만 지리산자락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를 사랑했고, 동네 사랑방처럼 드나들었다. 셋이 아무리 먹어도 5만 원이 넘지 않을 정도로 음식값도 싸다. 그때 그때 제철음식도 서비스로 듬뿍듬뿍 나온다. 새 식당은 깔끔하다. 그릇들도 제 자리에 가지런히 빛나고 있다. 하나같이 주인장을 닮았다. 하지만 음식 맛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061-782-5474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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