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최형국의 무예 이야기]깃발 신호의 뜻-조총 쏘는 요령, 군가로 익혔다

  • Array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선시대의 군가

‘화성행행도’ 중 ‘시흥환어행렬도’의 일부. 이 작품은 1795년 2월 15일 화성행궁을 떠난 정조가 시흥에 있는 행궁에 도착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조선 후기 병사들의 실제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성행행도’ 중 ‘시흥환어행렬도’의 일부. 이 작품은 1795년 2월 15일 화성행궁을 떠난 정조가 시흥에 있는 행궁에 도착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조선 후기 병사들의 실제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내가 바로 사나이 멋진 사∼나이’로 시작하는 군가(軍歌) ‘멋진 사나이’는 군대와 무관한 사람이라도 신나게 따라 부를 만큼 널리 알려진 노래다.

무릇 군가란 추운 날씨 속에서 진행되는 고된 훈련에도 산과 강에 울려 퍼질 정도로 우렁차게 불러야 제맛이다. 군가에는 병사들의 사기와 혼이 담겨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 조선시대 병사들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군가를 불렀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군가 노랫소리가 산천을 뒤덮었다.

조선 군가의 목적은 ‘신호체계’ 숙달

조선시대의 군가 가운데 병사들이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는 신호체계 암기를 위한 것이었다. 옛날에는 전투 도중의 신호체계로 깃발을 주로 활용했다. 따라서 병사들에게 깃발을 통한 명령체계를 숙지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조선시대 전투 장면을 묘사한 사료를 살펴보면 싸움이 시작된 후에는 적군과 아군이 뒤섞여 백병전을 벌이기 때문에 지휘관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수백, 수천 명이 하나의 대형을 이뤄 싸우는 진법(陣法)을 활용하기 위해선 병사 모두가 신호체계를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병서에 실린 깃발 운용 관련 군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절)

휘도 오색, 기도 오색
휘로 지휘하고, 기로 응하네.
중축은 황색, 후형은 흑색, 전형은 적색
좌익은 청색, 우익은 백색, 모두가 알맞구나. ♪∼

(2절)

동서남북 방향은 휘의 지(指)에 따르되
들면 출동이요, 내리면 정지일세.
휘두르면 기병과 보병이 모두 함께 싸우되
더디고 빠름은 장수의 뜻대로라. ♪∼

―조선시대 군가 ‘기휘가(旗麾歌)’ 중 일부


‘시흥환어행렬도’ 중 임금을 상징하는 용기(龍旗) 부분을 확대한 모습. 그 뒤를 각 군영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따르고 있다. 실제 전투현장에서는 깃발의 색과 움직임에 따라 군사들의 이동이 이뤄졌다.
‘시흥환어행렬도’ 중 임금을 상징하는 용기(龍旗) 부분을 확대한 모습. 그 뒤를 각 군영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따르고 있다. 실제 전투현장에서는 깃발의 색과 움직임에 따라 군사들의 이동이 이뤄졌다.
노래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면 먼저 ‘휘(麾)’라는 깃발이 등장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휘란 길게 꼬리가 달린 깃발로 장수가 명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신호용 도구였다. 요즘도 사용하는 ‘누구누구의 휘하의 사람입니다’라는 표현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하급 지휘관들은 휘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깃발로 군사들을 지휘한다. 그리고 각 부대는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서로 다른 색(오방색·五方色)의 깃발을 사용했다. 중앙군은 황색, 동군은 청색, 서군은 흰색, 남군은 적색, 북군은 검은색을 쓴 것이다. 여기에 깃발을 앞으로 한 번 내렸다가 올리거나, 좌우로 휘두르는 신호에 따라 공격과 방어의 속도를 조절했다.

또한 이때에는 징이나 북을 비롯한 신호용 악기를 함께 사용해 시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방식으로 병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징과 같은 금속성 악기는 주로 후퇴를 의미했고, 가죽으로 된 북이나 나팔 같은 관악기는 진군을 뜻했다. 소리의 속도 역시 완급을 조절하는 신호가 되기도 했다.

조총 쏘는 방법도 군가로 익히다

모든 병사는 신호와 명령 체계를 숙지하기 위해서라도 군가를 함께 외워 불러야 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익혀야 할 내용이 추가됐다. 바로 ‘조총 쏘는 법’이다. 요즘에도 훈련병들이 처음 신병교육대에 들어가 사격훈련을 할 때면 총구를 위로 향하고 쏘는 방법을 크게 허공에 외친다. 조선시대에는 쏘는 방법이 훨씬 더 복잡한 조총의 사격법을 군가로 부르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요즘 총은 연발로 장전된 탄창을 총에 끼우기만 하면 되지만 조선시대의 조총은 화약과 둥근 탄환을 차례로 넣어야 했다. 그 순서가 잘못되면 총알이 나가지 않거나 심하면 총열이 터지는 등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조총병들은 사격훈련 때마다 총기용 군가를 불러야 했다. 모두 14단계로 된 가사는 다음과 같다.

“총 닦고, 화약 내리고, 삭장(꽂을대)으로 화약 넣어 채우고, 납 탄알 내리고, 삭장으로 납 탄알 누르고, 복지(마개종이) 내리고, 복지 누르고, 화기 아가리 열고, 화약심지 내리고, 화기 아가리 흔들어 아가리 화약이 내려가 몸통 화약과 섞이도록 하고, 곧바로 화포 아가리 닫고, 용두(조총의 갈고리 쇠)로 화승 누르고, 명에 따라 화포 아가리 열고, 적을 조준해 발사. ♪∼”

―‘총가(銃歌)’

당시 사료에는 전투에 나간 조총병들이 흔히 하는 실수들이 등장한다. 적이 달려오는데 하늘을 향해 총을 쏘는 군사, 앞을 향해 총을 쏘기는 하나 머리는 이미 뒤를 돌아보며 달아날 길을 찾는 군사, 화약은 넣었는데 정신이 혼미해져 총알을 넣지 않은 군사, 조준 시 총구를 낮게 기울여 총알이 흘러나오는 군사 등 일선 지휘관이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심지어 다 쓰지 않은 화약과 총알을 아무 데나 던져 버리거나 화약에 불이 붙으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병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수들은 병사들에게 목이 터져라 이런 ‘총가’를 부르도록 했다. 병사들이 불렀던 군가는 총가가 아니라 생명을 연장시키는 ‘생가(生歌)’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요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강력한 지휘계통의 일원화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 훈련일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언제 닥쳐올지 모를 전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의미심장한 군가를 불렀다는 사실을 한 번 더 되새겨 보자.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