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풀어 쓴 통일-다문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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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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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남북주민보고서’-‘세계의 시간’ 낸 하종오 시인

이런 상상은 어떨까. 쿠웨이트 건설현장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파키스탄인 마우두디 씨. 그가 만난 남한 기술자 김기태 씨와 북한 일꾼 최해진 씨는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만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서먹하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서로 대화하지 않는 두 사람을/마우두디 씨는 안타까워했다/…/퇴근 후에 숙소에 돌아간/김기태 씨는 전공 서적을 펴놓고/밤늦도록 공부를 하였고/최해진 씨는 요기를 하고 나서/아침까지 잠에 곯아떨어졌다/그런 동안 마우두디 씨는 손전등을 켜들고/시간마다 건설현장을 순찰하였다’(시 ‘두 사람’에서)

10여 년 전부터 다문화와 남북문제에 관한 시들을 선보였던 하종오 시인(59·사진)이 시집 ‘남북주민보고서’와 ‘세계의 시간’(이상 도서출판 b)을 나란히 펴냈다. 남북한 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외국인 노동자의 시각을 담은 상상력 짙은 시편들이다. 리얼리즘 시를 쓰는 시인은 인물들을 바로 지켜보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들로 남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그린다. 통일과 다문화 문제에 관심이 적은 요즘 문단에서는 반가운 작품들이다.

정치적으로 남북 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여론도 그렇다. 하지만 시인은 꾸준히 북에 손을 내미는 문학적 도전을 이어간다. 왜일까. “통일은 정치인이 아닌 남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희망에 의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의 소통이 우선이죠. 결과를 떠나 문학적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통일을 민족문제가 아닌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남북을 둘러싼 경제 현장을 담은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북한 기술자로부터 언어를 배운 인도인이 한국 공장에 취직하는 얘기(‘말씨’)나 몽골 의류공장에서 양털 깎던 몽골인이 한국으로 돈벌러 떠나자 그 자리를 북한 노동자가 메우는 얘기(‘양털 스웨터’) 등이다. 시들을 읽다보면 외국인 노동자라는 한 다리만 건너면 남북이 벌써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가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다. 시인도 이를 안다. 그래서 남북이나 다문화 문제도 결국 정서적인 교류와 상호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인이 노래하는 ‘빨랫줄 소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하종오 시인#남북주민보고서#세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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