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노동의 민주화 이어 ‘한가로움의 민주화’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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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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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시간의 향기’ 번역 출간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

화제작 ‘피로사회’에 이어 ‘시간의 향기’를 국내에서 출간한 한병철 독일 베를린 예술대 교수. 문학과지성사 제공
화제작 ‘피로사회’에 이어 ‘시간의 향기’를 국내에서 출간한 한병철 독일 베를린 예술대 교수. 문학과지성사 제공
“오늘날의 피로사회는 시간 자체를 인질로 잡고 있다. 이 사회는 시간을 일에 묶어두고, 시간을 곧 일의 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일의 시간은 향기가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일의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이 없다. 쉬는 시간은 그저 일의 시간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일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간을 생성하는 ‘시간 혁명’이다.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는 시간 혁명.”

지난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 ‘피로사회’를 쓴 재독 철학자 한병철 베를린 예술대 교수(54)의 신간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가 13일 출간됐다. 고려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과 독문학, 가톨릭신학을 공부한 그는 독일어로 쓴 ‘피로사회’(2010년)로 독일 철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1세기 사회가 타인에 의한 ‘규율사회’에서 자기착취에 의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꼬집은 이 책은 지난해 동아일보가 선정한 ‘2012 올해의 책 10권’과 출판인 18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통령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된 ‘시간의 향기’는 ‘피로사회’의 전작으로, 2009년 독일에서 먼저 나왔다. 현대사회에서 ‘노동의 인질’이 되어버린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았다. 간결한 문장 안에 함축적 의미를 집약하는 난해한 글쓰기 방식은 ‘피로사회’와 비슷하다.

한 교수는 책에서 오늘날 시간이 리듬과 방향을 상실하고 원자화되어 위기를 맞았다면서 근대 이후 ‘활동적 삶’이 절대적 가치가 된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중세까지는 ‘사색적 삶’이 활동적 삶보다 우위에 있었으나 근대에 들어와 노동을 찬미하면서부터 가치 우위가 뒤바뀌었다는 것. 게다가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생산하는 소비사회에 들어오면서 인간에게는 사색할 시간이 더욱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한가로움은 삶의 필요 너머에 놓인, 강요도 걱정도 없는 자유의 공간을 열어준다”며 “사색적인 평온함이 절대적으로 우선시된다”고 주장한다. 노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며, 인간은 모든 근심이나 강제에서 해방된 한가로운 상태일 때만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논리다. 따라서 그는 “노동의 민주화에 이어 ‘한가로움의 민주화’가 도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미에 옮겨놓은 니체의 말은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시간의 향기#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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