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말을 건네온다, 시인을 닮아 둥글고 따뜻한 詩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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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함민복 지음/136쪽·8000원·창비

함민복 시인이 8년 만에 새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둥그렇고 넉넉한 그의 성품이 한권의 시집에 오롯이 담긴 듯하다. 동아일보DB
함민복 시인이 8년 만에 새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둥그렇고 넉넉한 그의 성품이 한권의 시집에 오롯이 담긴 듯하다. 동아일보DB
시(詩)는 시인을 닮는다. 시가 시인의 내면에서 육화(肉化)돼 외부로 터져 나오는 것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와 시인의 합일점이 보다 뚜렷한 작가를 꼽는다면 함민복 시인(52)은 앞자리에 자리 잡을 것 같다. 넉넉하고 푸근한 그의 성정은 시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1988년 등단한 그가 25년 동안 사랑을 받는 것도, 독자들이 그의 따스함을 글에서 읽었기 때문이리라.

여기 양팔저울이 있다. 미량의 무게 차이에도 삐걱거리는 불안감. 이제 한쪽은 너가 되고 다른 쪽은 내가 된다고 시인은 속삭인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당신을 읽어나갑니다//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시 ‘양팔저울’에서)

상대에 나를 맞춰 서로 수평을 이루는 양보는 결국 삶의 짐을 더는 지혜다. ‘양팔저울’ 외에도 ‘줄자’ ‘수평기’ ‘직각자’ ‘나침판’ ‘앉은뱅이저울’ 등의 작품들을 담았다. 왜 온갖 ‘측정기’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가 피식 웃는다.

“원래는 이런 측정 기구들만 다룬 시들로 시집을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받치고 있는 ‘약속’ 같은 것들을 새롭게 보고 싶었지요.”

측정기구가 받치고 있는 것은 계량적 토대로 이뤄진 물질적 세상, 즉 자본주의다. 시인은 측정기구들의 의미를 확장해 기구들이 잴 수 없었던 삶의 넓이와 무게까지 헤아려본다.

시인은 대중에게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를 쓰는 작가로 인식돼 있지만 ‘무른 사람’은 아니다. 관찰력은 섬뜩할 정도다. 시 ‘외바퀴 휠체어’의 일부는 이렇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외바퀴/휠체어 탄 사람이 주차되어 있다//그 위로/장애인 스티커 붙인 차가 진입한다//사각 보호선에 갇혀 비명도 없이/차에 깔리는 휠체어 타고 있는 사람….’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람이 또 다른 휠체어 탄 사람을 치는 아이러니라니!

8년 만에 나온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로 시작하는 그의 대표작 ‘긍정적인 밥’처럼,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편도 여럿 눈에 띈다. ‘달’ ‘흔들린다’ ‘봄비’ 등이다.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달은/마음의 숫돌//모난 맘/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달//그림자 내가 만난/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 전문)

시인은 2011년 3월 6일 나이 쉰에 동갑내기 아내를 맞았다. 부부 나이의 합이 100세였다. 늦깎이 결혼에 문단은 잔치를 벌인 듯 즐거워했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인삼센터에서 인삼가게 ‘길상이네’를 열고 있는 시인에게 ‘결혼 2주년에 뭐할 건가’ 묻자 더듬거리며 말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선물 생각을 못했다…. 하루 쉬어야 하나….” 역시 그답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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