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정글서 막 튀어나온 야성미… ‘겐조의 부활’ 예견했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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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회장 인터뷰

권기찬 회장이 이끄는 웨어펀의 사명은 ‘입다(wear)’와 ‘즐겁다(fun)’라는 뜻의 단어를 조합해 만든 것이다. 권 회장은 
“디자인 수장이 바뀌면서 한결 젊어진 ‘겐조’는 세계 시장에서 5년 내에 매출이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권기찬 회장이 이끄는 웨어펀의 사명은 ‘입다(wear)’와 ‘즐겁다(fun)’라는 뜻의 단어를 조합해 만든 것이다. 권 회장은 “디자인 수장이 바뀌면서 한결 젊어진 ‘겐조’는 세계 시장에서 5년 내에 매출이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요즘 국내 패션업계에서 ‘겐조’ 열풍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아이돌 걸그룹 멤버들이 사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겐조 옷을 논하는가 하면, 한때 매출 부진으로 하나둘 철수했던 매장들이 핵심 상권에 속속 다시 들어서고 있다. 겐조가 대표 이미지로 내놓은 호랑이 모티브가 히트를 치면서 다른 브랜드들 역시 ‘미투(me too)’ 디자인을 내놓았다. 뚜렷한 아이덴티티만큼이나 부침이 심한 운명이던 고급 패션 브랜드 ‘겐조’의 부활은 이 브랜드의 가치를 아는 패션인들에게 반갑고, 심지어 감격스러운 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특히 겐조를 소유한 프랑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이 2012년 봄여름 시즌부터 구원투수로 영입한 두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 한 명은 한국계 미국인인 캐럴 림(38)이라 국내 패션계의 관심이 더욱 높아진 상태다. 일본 디자이너가 파리에서 만든 글로벌 브랜드를, 한국인의 DNA를 가진 인물이 이끌게 된 셈이다.

갤러리아 명품관에 재입점

국내에서 이 부활의 과정을 가장 뿌듯하게 지켜보는 이는 이 브랜드를 한국에 25년 전 처음 도입해 현재까지 수입 판매하고 있는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회장이다. 동아일보 A Style은 권 회장을 통해 ‘겐조의 부활’ 스토리를 들어봤다.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오페라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겐조가 14일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 재입점하게 된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권 회장은 개관 5주년을 맞아 지난해 말 도산대로에 새롭게 문을 연 오페라갤러리 서울도 운영하고 있다.

또 그는 해외 유명 브랜드 수입업체들의 모임인 LIBA의 회장을 다년간 맡아온 수입 패션업계의 산 증인이다. 패션 브랜드를 국내에 도입해 관련 사업을 키운 공로로 2004년 대통령표창을, 200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받기도 했다.
-겐조의 부활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뉴욕의 편집숍 ‘오프닝 세리머니’의 두 수장, 캐럴 림(38)과 움베르토 레온(38)이죠. 이들의 영입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세계 글로벌 패션 브랜드 역사상, 디자이너가 아닌 마케터이자 바이어인 이들이 디자인을 맡게 된 것은 정말로 파격적인 일이죠. 처음엔 클로에를 키운 피비 필로를 셀린이 영입한 것처럼, 업계의 거물을 영입했으면 했어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멀티숍을 설립한 성공 신화가 있긴 했어도, 디자이너 출신도 아닌 이들이 어떻게 이 큰 브랜드를 이끌 수 있을까 걱정했죠. 하지만 이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컬렉션과 매출이 곧바로 확인시켜줬습니다.”

“겐조는 사라질 브랜드 아니다”
-LVMH 최고경영진이 디자이너를 교체하는 데 적잖게 힘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디자이너로는 겐조의 미래가 없다고 고위 임원들에게 끊임없이 설명했죠. 이탈리아 출신의 전(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오 마라스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임원진도 처음엔 주저하더라고요. 결국 저의 요구대로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디자인 수장을 교체하는 어려운 결정을 단행하는 것을 보고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림과 레온이 첫 컬렉션을 펼치던 날 LVMH 패션부문 최고경영자(CEO)에게 ‘정말 자랑스럽다. 이것은 변화가 아니라 혁신이다’라는 내용의 긴 메일을 보냈어요.”

-겐조가 수년간 표류했던 이유는 뭔가요.

“브랜드 창립자 다카다 겐조가 1999년 60세의 나이로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를 도와 함께 일했던 질 로지에르가 디자인을 맡았는데, 갑자기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우를 범했습니다. 정글 등 이국적이고 강한 모티브가 특징인 브랜드에서 처음 선보인 컬렉션 테마가 ‘사하라 사막’이었으니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를 선보인 셈이죠. 그 컬렉션의 패션쇼 현장에 있었는데 모델들이 캣워크를 걸어 나오는 순간, ‘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95%까지 소진율이 나오던 브랜드가 50%도 안 되는 비인기 브랜드로 추락했죠. 이후 디자인 사령탑을 맡은 게 마라스인데 겐조의 아카이브를 이용한 컬렉션을 선보인 첫해 이후부턴 열기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사업적으로도 7,8년 큰 손해를 봤지만 ‘겐조가 이렇게 사라질 브랜드가 아니다’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어요.”

-국내 명품업계 1세대로서 아이그너, 소니아 리키엘, 폴앤조와 캐시미어 전문브랜드 콜롬보 등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해 오셨습니다. 겐조와는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개인적으로 ‘장미꽃과 자연의 화가’ ‘목련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겐조의 화려한 디자인과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철학에 매료되었죠. LVMH가 겐조를 인수하기 5년 전, 당시 일본에 있던 아시아·태평양지역 오피스를 찾아가 담당자들을 설득했어요.”

-처음 명품 수입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궁금한데요.

“1986년에 수입 자유화가 된다는 얘기를 듣고 사업을 준비했어요. 면세 사업을 하던 사람, 보따리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속속 패션 수입 사업에 뛰어들었죠. 제 경우엔 한국외국어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해 중동 근무를 하게 된 것이 남들보다 빨리 수입 패션 브랜드들을 익히는 계기가 됐어요. 한양주택에 입사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지사에 파견됐는데, 한창 중동 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유명 백화점 브랜드들이 속속 리야드에 입성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거래처 방문차 유럽 출장도 많이 갔는데 시간만 나면 쇼핑 거리를 누비며 브랜드들을 익히고 쇼핑을 즐겼죠. 한양이 한때 패션사업을 추진하면서 라이선스 계약을 하기 위해 각국을 돌아다닌 경험도 있고요.”

그와 함께 국내 수입 패션 브랜드의 역사를 열었던 1세대 동지 중 상당수는 이미 업계를 떠났다. 대기업들이 수입 패션업에 속속 관심을 가지면서 중소 수입업체들이 설 곳이 없어진 탓이라고 권 회장은 분석했다.

이런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그가 27년간 패션사업을 유지한 것은 패션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이다.

2013년 봄여름 시즌을 겨냥해 겐조가 선보인 컬렉션. 아시아의 정글에서 영감을 얻어 열대우림, 동물 프린트 등을 디자인 키워드로 제시했다. 웨어펀 제공
2013년 봄여름 시즌을 겨냥해 겐조가 선보인 컬렉션. 아시아의 정글에서 영감을 얻어 열대우림, 동물 프린트 등을 디자인 키워드로 제시했다. 웨어펀 제공
“패션 비즈니스는 문화사업”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 소재 양복을 입었을 정도로 트렌드세터다. 60대가 된 지금도 슬림핏 정장과 폭이 좁은 넥타이를 멋있게 소화하기로 유명하다.

“대구 출신인데 중학생 시절, 대구 양키시장에서 구제 옷을 직접 사러 다닐 정도로 멋을 부렸어요. 대학 입학 이후에는 명동 맞춤집에서 옷을 디자인해 입기도 했고요. 패션사업을 하기 전부터도 사람들이 제게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을 입으면 좋은지 많이들 물어왔죠.”

유난히 패션감각이 좋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는 패션 유전자는 권 회장을 거쳐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의 아들 권문수 씨(34)는 최근 주목해야 할 신진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남성복 디자이너다.

겐조는 이번 시즌, 갤러리아백화점을 필두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 신세계 본점,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 등 4곳에 새롭게 매장을 연다. 권 회장은 “신규 브랜드도 아닌데 한 시즌에 백화점 매장 4곳에서 한꺼번에 문을 여는 것은 수입 패션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강조했다.

겐조의 부상으로 한결 더 바빠진 그는 오페라갤러리 사업에도 계속 힘을 쏟을 예정이다. 그는 파리 생토노레의 명품 거리에 위치한 오페라갤러리 파리를 자주 찾았던 것을 인연으로 오페라갤러리 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권 회장은 행복 바이러스가 전해지는 밝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좋다며,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화가 리타 카베유트가 그린 코코 샤넬의 얼굴과 하트와 나비가 조화를 이루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등을 소개했다.

“패션 비즈니스 자체가 일종의 문화사업이라고 믿습니다. 패션과 미술을 통해 사람들이 즐거움과 위안을 얻어 모든 이의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돕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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