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무대… 다시 만나 기뻐” “3년새 제 연기도 깊어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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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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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이미’의 모녀역 윤소정-서은경

날카로운 극작과 탄탄한 연출, 팽팽한 연기의 3박자를 갖춘 연극 ‘에이미’로 3년 만에 다시 다정다감한 딸 에이미와 자존심 강한 어머니 에스메로 호흡을 맞추게 된 서은경(왼쪽)과 윤소정 배우. 모녀 연기만 벌써 네 번째라는 두 사람의 표정에선 선후배 이상의 따뜻한 정감 같은 게 흘렀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날카로운 극작과 탄탄한 연출, 팽팽한 연기의 3박자를 갖춘 연극 ‘에이미’로 3년 만에 다시 다정다감한 딸 에이미와 자존심 강한 어머니 에스메로 호흡을 맞추게 된 서은경(왼쪽)과 윤소정 배우. 모녀 연기만 벌써 네 번째라는 두 사람의 표정에선 선후배 이상의 따뜻한 정감 같은 게 흘렀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선배나 동년배 여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쓰러져 죽을 때까지 연기 혼을 불태우겠다’고들 하던데 전 달라요. 지금까지 원 없이 연기도 해봤고 보상도 받을 만큼 받았으니 물러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3년 전 처음 ‘에이미’ 출연 제의를 받고 제 마지막 무대로 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동안 이리저리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작품을 거절하지 못해 세 작품이나 더 했어요. 그런데 다시 ‘에이미’를 하게 됐으니 정말 마지막 무대가 될 것 같아요.”

배우 윤소정 씨(69)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2010년 2월 서울 대학로 아르코극장 소극장에서 초연돼 그에게 대한민국연극대상과 히서연극상을 안겨준 연극 ‘에이미’를 3년 만에 재공연하면서 자신의 ‘백조의 노래’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1975년 ‘환절기’(오태석 작·임영웅 연출) 이후 38년 만에 명동예술극장(15일∼3월10일)에 서는 감회에 대해서도 “마지막 무대를 연극배우들의 마음의 고향 같은 명동예술극장에서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답했다.

3년 전에 이어 다시 타이틀 롤(에이미)을 맡은 서은경 씨(37)가 “3년 전 처음 출연 제의를 받고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윤소정 이호재 김영민 백수련 같은 선배님들과 출연하는 것만도 영광인데 제가 그 타이틀 롤을 맡다니…”라고 당시를 회상하니 “너, 몰랐니?”라고 끼어들었다. “뭘요?” “네가 그 배역 맡은 거 내가 추천해서야. 그 배역 탐내는 여배우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어머, 정말요? 진짜 몰랐어요. 선생님.” “몰랐구나? 딴 배우들 이름이 나오길래 내가 단칼에 잘랐다. ‘연기는 호흡이다’라면서. 이번 공연에서도 네 발목 부러지기를 기다리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이제 알았다니 네가 밥 한번 사라.”

사실 여배우라면 ‘에이미’는 정말 탐낼 만한 작품이다.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가 1997년 발표한 이 작품(원작 ‘Amy’s View’)은 1980∼90년대 신자유주의로 인한 문화적 변모를 영국 예술가 가족사에 쌉싸래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투영한 수작이다.

극의 갈등의 축은 에이미의 어머니이자 연극배우로서 고고한 자부심을 지닌 에스메와 에이미의 남자친구이자 영화감독을 꿈꾸는 재기발랄한 도미닉 사이에서 발생한다. 연극과 영화 대본을 함께 쓰는 헤어는 전통적 예술을 상징하는 연극과 문화소비자로서 관객의 수요에 부응하는 영상매체의 실상과 허상을 거침없이 파고들며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예술관의 변화를 폐부를 찌르는 명대사로 포착한다.

에스메는 예술관이 다른 사위뿐 아니라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는 딸과도 신랄한 논전을 벌이며 전통과 현대, 냉소와 열정, 고상함과 솔직함, 가식과 폭로에 대해 기지 넘치는 대사를 쏟아낸다. 웬만한 연극의 주인공 대사가 500마디를 못 넘긴다는데 ‘에이미’에서 에스메의 대사는 670마디나 된다.

극 중 에스메는 “요즘은 도통 여배우가 할 만한 배역이 없다니까”라는 대사를 반복하는데 그 에스메야말로 여배우가 탐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배역이다.

“대사 양 자체도 많지만 대사를 서로 주고받는 타이밍도 빨라서 나이 먹은 배우에겐 너무 벅차요. 두 번째 공연이라 괜찮겠거니 했는데 ‘내가 다 말아먹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네요.”

이렇게 엄살을 떠는 윤 씨에게 그런데 왜 ‘에이미’를 택했냐고 물었더니 “내가 연기는 잘 못해도 동년배 여배우 중 에스메 역을 나만큼 잘할 여배우도 또 없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내내 윤 씨의 어록은 계속됐다. ‘연극은 배우 맛이다’ ‘과잉은 결핍의 산물이다’ ‘인위적인 것 없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그게 멋이다’….

이번 공연에선 도미닉 역으로 김영민 씨를 대신해 ‘전명출 평전’과 ‘루시드 드림’의 정승길 씨가 투입된 것을 빼고 연출가 최용훈 씨를 포함해 출연진과 제작진이 같다. 그 대신 중극장에 맞춰 무대가 더 커지고 아름다워졌다. 윤 씨와 모녀 역만 네 번째인 서 씨에게 이번 공연의 차별성을 물었다.

“정승길 씨는 김영민 씨와 또 다르게 반항적 매력이 참 좋아요. 게다가 저도 3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예전과 전혀 다른 눈으로 에이미를 이해하게 돼 연기의 깊이가 달라졌어요. 여자로서 나이를 먹는 것은 참 슬픈데 배우로서 나이 먹는 것은 감사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윤 씨는 그런 후배에게 극중 에스메의 대사를 인용하며 답했다. “그렇지. 연극은 시간이 필요해. 장담하는데 너도 에스메 역 할 수 있어!”

2만∼5만 원. 1644-200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에이미#윤소정#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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