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방문의 해/부산]느리게 걷고 천천히 돌아보며 부산의 아름다움 속으로

  • Array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슬로시티 부산
대도시 안 작은마을… 자연·전통문화 지키는 슬로시티 명소


‘느리게 걷고, 천천히 돌아보며, 삶의 휴식과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 부산’.

부산에는 1999년 이탈리아 그레베인 키안티에서 자연과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느리게 먹기와 느리게 살기운동으로 시작된 ‘슬로시티’의 철학이 배어 있다. 슬로시티는 인구 5만 미만의 지방자치단체만 가입 가능하다. 부산은 이런 지정요건에서 벗어나지만 대도시 안에서 작은 마을 단위로 전통문화와 자연, 지역예술을 지키려는 운동이 실천되고 있어 2009년 11월 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협력도시로 가입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보수동 책방골목과 갈맷길 2코스(이기대길)를 슬로시티 관광명소로 선정했다. 또 감천문화마을과 산복도로 등에 대해서는 관광명소 선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

부산 중구 국제시장 국민은행 사거리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은 전국 유일 헌책방골목. 새 책과 헌책, 참고서와 동화책, 고서와 외국원서, 만화와 잡지 등 활자로 된 것은 다 있다. 책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억과 기억을 더듬게 하고 과거와 미래, 현실과 상상을 사고판다.

이 골목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피란 온 한 부부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와 만화, 고물상에서 수집한 헌책들을 판매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 부산으로 피란 온 학교들이 보수동 뒤 구덕산 자락에 노천 천막교실을 열면서 이 일대는 통학로가 됐다. 1960, 70년대에는 70여 개 점포가 성업할 정도로 부산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에는 문화가 접목돼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리고 카페 등 편의시설들도 생겨났다. 벽화 계단도 이채롭다. 책방골목문화관에서는 이 골목의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인근에는 자갈치·국제시장, 용두산 공원, 영도다리 등 둘러볼 관광지도 많다.

감천문화마을

천마산을 끼고 감천항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 다랭이 마을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의 애칭은 ‘한국의 산토리니’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촌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이 산동네는 성냥갑 같은 집이 산자락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고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도 출구가 나오는 실핏줄처럼 뒤엉킨 사통팔달로(四通八達路)가 이색적이다. ‘미로 미로 골목길 가꾸기 사업’으로 골목마다 사진갤러리와 북카페 등 테마별 공간과 벽화, 예술작품도 설치돼 있다. 감천항과 부산항 북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 전망대 ‘하늘마루’도 있다.

한국 일본 태국 3개국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 ‘슈퍼스타 감사용’, 일본 영화 ‘히어로’에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유엔-해비탯 후쿠오카(福岡) 본부가 주관한 ‘2012 아시아도시경관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세계 16개국 청년들이 참가하는 ‘유네스코 국제 청소년 워크캠프’도 4년 동안 이곳에서 열린다.

산복도로

부산에도 그리스 리카비토스 언덕, 포르투갈의 알파마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있다. 바로 산복도로(山腹道路)다. 부산 전역 산비탈 65km에 걸쳐 있는 산복도로는 ‘서민의 마천루’로 불린다. 어느 시인은 부산 사람과 부산 풍경의 시작이자 끝이 산복도로라고 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도시재생사업으로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해 5월에는 전진기지 역할을 할 ‘산복 사랑방’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1차 사업구간인 중구 4개 마을과 동구 10개 마을 주민, 전문가들이 모여 매력적인 생활공간 꾸미기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지역민 스스로 운영하는 ‘마을기업’도 문을 열었다. 동구 초량6동 산복도로종합체험센터 ‘까꼬막’은 지난해 8월, 사하구 감천2동 감천 옛 지명인 ‘감내(신의 마을)’ 카페는 지난해 7월, 서구 서대신4동 ‘꽃마을 문화예술 전시관’은 지난해 6월 각각 문을 열고 휴게커피숍 및 문화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 부산 갈맷길, 해안 숲 강변 등 종합 걷기 선물세트로 골라 걷는 재미 쏠쏠 ▼

갈맷길 2코스 이기대길 전경
갈맷길 2코스 이기대길 전경
걸으면서 느끼는 부산의 아름다움은 색다르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부산에는 갈맷길이 있다. 2009년 만든 이 길은 ‘걷고 싶은 도시 부산’를 선포하면서 꾸며지기 시작했다. 갈맷길은 부산을 상징하는 갈매기와 길을 결합한 조어로 시민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름. 도심 안에 아름다운 산과 바다, 강과 온천이 어우러진 곳에 길을 냈다.

부산 갈맷길의 매력은 해안길, 숲길, 강변길, 저수짓길 등 종합 걷기 선물세트로 구성돼 입맛 따라 골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7개 해수욕장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이기대, 신선대, 몰운대, 태종대 등 경승지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도심의 근접성과 편의성도 큰 장점이다. 실핏줄처럼 퍼진 대중교통체계는 언제 어디서든지 걷기를 돕는다.

9개 코스 중 해운대 문탠로드에서 남구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에 이르는 이기대길(2코스)이 갈맷길의 백미. 깎아지른 해변 길 밑으로 감청빛 파도가 밀려와 철썩 하고 부서지는 곳은 전국 어디에서도 흔치 않다. 영화 ‘해운대’, 드라마 ‘적도의 남자’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광안대교와 광안리해수욕장, 해운대 도심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다. 낮에도 아름답지만 수평선에 머무는 오징어잡이 배와 도심의 야경이 대비를 이루는 밤길은 꿈속에서나 본 듯한 풍경들이다. 이기대길의 진짜 매력은 단순히 바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안가 자갈 소리를 들으며 돌을 밟으며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지층에 파도의 침식으로 생긴 해식동굴, 해녀들이 해산물 채취 조업 후 어구 보관 및 휴게공간으로 사용되는 해녀막사, 6500만 년 전 초식공룡인 울트라사우루스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화석, 바다에서 바라보면 갈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치마바위, 장롱을 포개놓은 듯한 농바위 등이 길을 걷는 재미를 더한다. 국가명승24호로 지정된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으로 동해와 남부의 분기점이다.

1코스는 기장군 임랑해수욕장∼수산과학원∼일광해수욕장∼죽성만∼대변항∼오랑대∼해동용궁사∼송정해수욕장∼해운대 문탠로드까지로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다. 3코스는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신선대∼유엔기념공원∼부산진시장∼초량성당∼국제시장∼자갈치시장∼남항대교까지로 걸쭉한 부산사투리가 정겹게 맞이한다. 4코스는 영도 남항대교에서 낙동강 하굿둑까지로 남항 앞바다에 떠 있는 대형 선박들이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부산에서 가장 많은 섬을 품고 있는 다대포와 두송반도 일원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낙동강하굿둑에서 천가교에 이르는 5코스는 오밀조밀한 해안길, 흑백사진 같은 어촌마을과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호젓함마저 느껴진다. 낙동강하굿둑에서 부산진구 성지곡수원지 까지의 6코스는 강의 소멸과 바다의 탄생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 좋은 길이다. 습지와 갈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백양산 백양대에 이르면 성지곡수원지를 비롯한 주변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부산 앞바다까지 바라볼 수 있다. 7코스는 성지곡수원지에서 금정구 범어사 아래 상현마을까지로 금정산의 구석구석을 음미해 볼 수 있다. 상현마을에서 민락교까지의 8코스는 사색 구간이라 할 수 있다. 투박한 바닷길과는 달리 회동수원지 길을 걸으면 발걸음조차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정적이 흐른다. 민락교에서 기장군청 간 9코스는 오지 구간이다. 피톤치드 배출량이 가장 많은 기장 테마임도도 이 구간에 포함돼 있다.

9개 코스 20개 구간에 이르는 갈맷길은 관광안내소, 부산시내 주요 호텔, 16개 기초단체 안네데스크에 비치된 지도에 상세히 소개돼 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지도도 있다. 지도를 들고 일단 길을 나서면 갈맷길 구석구석의 안내시설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