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가장 시끄러운 밴드… “최악 소음” vs “꿈을 꾼듯”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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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서울 공연

3일 밤 서울 광장동에서 열린 록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내한공연 무대.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3일 밤 서울 광장동에서 열린 록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내한공연 무대.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3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콘서트홀 유니클로 악스 앞에 별난 안내문이 붙었다.

‘공연의 높은 데시벨로 인해 귀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편안한 관람을 위해 제공해 드리는 이어 플러그(귀마개) 사용을 적극 권장합니다.’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1983년 아일랜드에서 결성된 4인조 록밴드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130dB(데시벨) 이상의 콘서트 음량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밴드’로 불린다. 전자기타 음향을 과도하게 증폭 왜곡해 얻어낸 노이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아왔다. 특히 1991년 2집 ‘러블리스’는 지미 헨드릭스 이후 전자기타의 표현 영역을 또 한 번 넓혔다는 평과 함께 1990년대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그러나 밴드는 이후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2008년과 2009년 몇 차례 공연을 했지만 신곡은 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음악 팬들의 경외감은 커져만 갔다.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공연이 있던 3일 0시, 홈페이지를 통해 전 세계에 22년 만의 새 앨범 ‘m b v’의 음원을 공개했다. 이는 음악계의 큰 뉴스로 세계에 타전됐고, 한국 콘서트는 이들의 역사적인 공연이 됐다.

공연 전 대기실에서 만난 리더 케빈 실즈의 분위기는 ‘결벽 환자’ ‘완벽주의자’라는 소문처럼 묘했다. 그는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불부터 껐다. 어두운 실내에서 낮고 억양 없는 목소리가 말했다. “음량이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다. 공연장 천장이 흔들려 분진이 쏟아지거나 벽돌이 떨어진 적은 있지만.” 그는 “열여섯 살 때이던 1979년 미국 밴드 라몬스의 콘서트를 본 뒤 노이즈와 기타 사운드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1988년부터 록 밴드 소닉 유스, 다이너소어 주니어, 허스커 두와 교류하면서 우리만의 기타 사운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실즈는 오랜 휴지기에 대해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만족할 만한 사운드를 낼 녹음 환경을 마련할 돈이 없었다”고 했다. “신곡 중에는 비행기 소리처럼 들리는 곡도 있다”며 그는 작게 웃었다.

공연 스태프는 관객의 손에 검지 한 마디만 한 크기의 귀마개를 쥐여 주었다. 7시 10분, 네 멤버가 무대에 올라 신곡 ‘뉴 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귀마개를 꼈다 뺐다 했다. 1991년 앨범 ‘러블리스’ 수록곡 ‘아이 온리 새드’ ‘웬 유 슬립’이 이어졌다. 거대한 음향이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의외로 견딜 만했다. 귀마개를 끼면 고음이 깎여 나가 음향이 먹먹해져서인지 대부분의 관객은 맨 귀로 감상했다.

‘일’은 1시간 30분 뒤 마지막 곡에서 벌어졌다. ‘유 메이드 미 리얼라이즈’를 연주하던 멤버들은 편집증 환자처럼 하나의 화성을 9분 동안 늘여 연주했다. 실즈가 장치를 발로 눌러가며 음량을 증폭시키자 코끼리 수천 마리가 행진해 오는 듯한 굉음이 났다. 배음(倍音)이 공연장의 육면체에 반사돼 섞이면서 실제 연주와 다른 화성과 패턴이 만들어졌다. 3분쯤 지나자 현기증이 나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일부 관객은 미간을 찌푸리며 귀마개를 주섬주섬 꺼내 꼈다.

관객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근래 본 최악의 공연이야.”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꿈을 꾼 듯해.”

공연장은 다행히 무너지지 않았고 밖에는 폭설이 쏟아졌다.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백색 소음)에 100분간 혹사당했지만 기이하게 이명(耳鳴)이 나지 않았다. 그들이 분출한 무질서 속에 정교한 질서가 있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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