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ISSUE]용이 되려다 만 킹콩, 천적은 호모 에렉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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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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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진화, 뜨거운 주제들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

①독일 바우첸 클라인벨카 공룡모형박물관에 전시된 모형. 기간토피테쿠스(가운데 덩치가 큰 녀석)와 호모 에렉투스(왼쪽)가 마주친 장면을 표현했다. 출처 워키디피아 ②기간토피테쿠스의 치아 화석. 흰색 네모(길이 3cm)와 비교해 보면 턱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③기간토피테쿠스의 어금니 화석. 어떤 유인원의 어금니보다도 크다. 출처 위키디피아
①독일 바우첸 클라인벨카 공룡모형박물관에 전시된 모형. 기간토피테쿠스(가운데 덩치가 큰 녀석)와 호모 에렉투스(왼쪽)가 마주친 장면을 표현했다. 출처 워키디피아 ②기간토피테쿠스의 치아 화석. 흰색 네모(길이 3cm)와 비교해 보면 턱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③기간토피테쿠스의 어금니 화석. 어떤 유인원의 어금니보다도 크다. 출처 위키디피아
설을 기준으로 용의 해가 저물고 뱀의 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용은 상상 속의 동물입니다. 그런데 용이 인류의 진화 역사에 살짝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용이 될 뻔한 인류, 영장류 중 가장 몸집이 컸던 ‘기간토피테쿠스’ 덕분입니다.

고릴라보다 큰 2.7m 신장

때는 20세기 초였습니다. 당시에도 중국의 전통 약재상에 가면 별의별 게 다 있었지요. 그중에는 ‘용뼈’도 있었습니다. 갈아서 한약 재료로 썼고,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중국으로 몰려든 사람 중에는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구스타프 폰 쾨니히스발트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홍콩의 약국을 구경하다 약재로 팔리는 용뼈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유인원의 이빨이었거든요.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생김새는 유인원의 이빨임이 틀림없었지만, 당시 발견된 어떤 유인원의 것보다 컸습니다. 폰 쾨니히스발트는 홍콩에서 구입한 용뼈 중 오른쪽 세 번째 어금니로 판명된 것을 연구한 뒤,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라는 새로운 화석 종으로 이름 붙여 1952년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용뼈의 주인공이 용이 아니라는 점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 대신 고릴라 같은 신종 유인원이 발견됐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중국에서 집요한 발굴이 이어졌습니다. 아쉽게도 발견된 화석은 이빨 수천 점과 턱뼈 세 점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은 이것들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알아 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 관심을 끈 건 몸집이었습니다. 기간토피테쿠스는 지금의 영장류 중에서 가장 큰 고릴라보다도 컸습니다. 수컷의 무게는 대략 고릴라 수컷의 1.5배인 270kg에 키는 2.7m나 됐습니다. 용뼈의 주인공은 용이 아니라 ‘킹콩’이었던 셈입니다.

왜 이렇게 몸집이 컸을까요? 가장 생각하기 쉬운 이유는 수컷끼리의 경쟁입니다. 몇 안 되는 수컷이 암컷을 독차지하는 경우, 수컷들은 ‘선택 받은’ 무리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몸집이 큰 수컷이 선택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2009년 학회 참석차 중국에 갔을 때입니다. 수십 년 동안 기간토피테쿠스를 연구한, 지금은 은퇴한 학자로부터 연구 자료를 받았습니다. 이빨 하나에 단어카드(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음) 한 장씩을 작성한, 소중한 자료였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빨 중 유독 송곳니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것입니다. 수컷끼리의 경쟁에선 송곳니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암수의 몸집이 비슷하지만 수컷의 경쟁이 치열한 침팬지도 암컷과 수컷의 송곳니 크기 차가 큽니다.

암수의 몸집 차는 크지만 송곳니 크기의 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은, 기간토피테쿠스 수컷끼리의 경쟁이 별로 치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의 몸집이 이렇게 커진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라져 간 대나무 숲

몸집이 크면 유리해지는 또 다른 분야는 포식자와의 싸움입니다. 덩치가 클수록 상대와 맞서기가 쉬우니까요. 이런 동물들은 대개 재생산(출산) 때문에 성장기가 상대적으로 빨리 끝나는 암컷 대신 수컷이 오래, 그리고 크게 자랍니다. 기간토피테쿠스 역시 천적 때문에 수컷이 커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킹콩의 천적은 누구였을까요?

‘인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간토피테쿠스가 남중국에서 서식하던 시기는 120만 년 전부터 30만 년 전까지였습니다. 그 당시 동아시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큰 짐승을 사냥해 먹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지역의 호모 에렉투스 유적에서는 말뼈가 많이 보입니다. 실제로 중국 지역의 말은 호모 에렉투스가 잡아먹어 멸종했습니다.

그렇지만 호모 에렉투스가 기간토피테쿠스를 잡아먹은 것은 아닙니다. 인류학자들은 대신 그들이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대나무 지대에서 서식하던 기간토피테쿠스는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는 판다와만 경쟁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호모 에렉투스가 끼어들었습니다. 동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나 유럽의 호모 에렉투스에 비해 돌로 만든 도구가 보잘것없고 그 양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들이 풍부한 주변의 대나무를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호모 에렉투스가 대나무를 남벌해 기간토피테쿠스가 살 곳을 파괴했을 가능성이 있겠지요.

기간토피테쿠스가 살던 시기는 기후가 점점 추워지고 건조해지는 때였습니다. 서식지인 열대성 삼림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포식자에 맞서서 몸집을 키웠지만, 기간토피테쿠스는 결국은 먹을거리 부족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후기의 이빨 화석에는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입니다. 척박해지는 기후와 줄어드는 먹을거리, 그리고 지나치게 커져 버린 몸집 때문에 기간토피테쿠스는 결국 멸종에 이른 것입니다.

기간토피테쿠스를 연구하면서, 저는 현재 아시아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유인원인 오랑우탄을 떠올렸습니다. 오랑우탄은 기간토피테쿠스가 살던 동남아 삼림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몸집이 크고 암수의 몸집 차가 큽니다. 그런데 오랑우탄은 고릴라처럼 일부다처제 생활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대일 짝짓기 생활을 하지도 않습니다. 희한하게도 오랑우탄은 철저히 외톨이처럼 홀로 생활합니다. 학자들은 오랑우탄의 ‘홀로서기’가 인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용이 될 뻔한 킹콩,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에서 배웠는지 모릅니다. 유인원의 가장 무서운 천적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요.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sang-hee.lee@ucr.edu
정리=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이 글은 ‘과학동아’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동시 연재됩니다.
#기간토피테쿠스#공룡모형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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