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춤추는 블록들… 꿈꾸는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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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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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손가락…테트리스

‘테트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떨어지는 블록에 시선을 빼앗겨본 경험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국민이 할 줄 알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게임이 바로 테트리스다. 게다가 현란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들이 앞다투어 출시되면서 테트리스를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만 갔다.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블록 맞추는 일에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느 순간, 테트리스는 시시하고 하잘것없는 게임이 되어 있었다.

일전에 나는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에 관한 단상’이란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썼다. ‘주인은 이제 시시한 테트리스 게임 같은 건/사람들이 하지 않는다고 했지,/대신 나는/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총질을 해대고 왔다.’ 언젠가부터 오락실에서 테트리스 게임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간혹 테트리스 게임이 있는 오락실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모니터 앞의 의자는 으레 비어 있거나 남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는 사람이 그 위에 앉아 있기 일쑤였다.

2000년대 초, 그래픽이 한층 개선된 테트리스 게임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관심이 사그라졌다. 이제 테트리스는 마니아들이나 즐기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가끔 테트리스를 즐긴다. 오락실에 갈 때마다 찾는 게임이 바로 테트리스다.

나는 지금도 테트리스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을 잊지 못한다. 화면의 중앙부에서 중절모를 쓴 채 갖은 기교로 춤을 추는 남자를 떠올리면 괜스레 쓸쓸해진다. “왕자님이 구해주지 않으면 저는 결국 악마에게 잡아먹힐 거예요”라고 외치는 공주보다 그의 몸짓이 훨씬 더 구슬프다. 어렸을 때 나는 그가 벽돌에 압사당하는 꿈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난 적이 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난생처음 연민을 느낀 순간이었다.

테트리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게임이다. 떨어지는 블록의 모양을 잘 바라보고 있다 빈칸의 모양에 맞춰 집어넣으면 되는 게임. 그러나 단계가 높아질수록 블록은 점점 더 빨리 떨어진다. 방향을 바꾸기도 전에 블록이 바닥에 착지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것은 착지라기보다 오히려 불시착에 더 가깝다.

이런 블록 하나 때문에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만다. 없어야 할 자리에 생겨난 혹처럼, 그것이 다른 블록의 진입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더 바빠지고 자기도 모르게 낮은 탄식이 새나온다. 한 끗 차이로 180도 틀어지고 마는 인생의 허탈함과 비슷한 감정이 게임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사실 다음 스테이지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은 대학 낙방이나 승진 실패에 비하면 그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어찌 보면 게임은 실패 후에 찾아오는 ‘멘붕’을 미리 극복하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블록이 운석처럼 맹렬하게 떨어질 때쯤 음악은 이미 귀에 성가신 존재가 되어 있다. 정신없이 바쁜데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올 때처럼 불쾌함이 밀려들 때도 있다. 인생에선 더 끔찍한 일들이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극복했을 때, 다음 스테이지로의 진출에 성공했다는 뜻의 팡파르가 울리면 절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더 무시무시한 스테이지가 떡하니 앞에 나타난다. 산 넘어 산이다.

테트리스는 틈을 메우고, 아귀를 맞추고, 그리하여 한 줄을 명쾌하게 완성하는 일로 이뤄진 게임이다. 그때의 쾌감은 실제 삶에서 주어진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을 때처럼 더없이 짜릿하다. 춤추는 블록들의 리듬을 따라 이따금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는 것, 라르고에서 프레스토까지의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것, 블록들을 피아노 건반 삼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 짜릿함과 자유로움이 테트리스 안에 모두 들어 있다.

오은 시인 wimwender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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