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로 보는 한국 영화의 컴퓨터그래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3000컷중 1700컷이 CG… 한국 ‘손기술’ 세계적

《 지난가을 개봉한 영화 ‘용의자X’에는 이요원의 목에서 스카프가 풀려 날아가는 장면이 있다. 스카프의 우아한 궤적이 인상적이지만 실제 촬영으로는 담기 힘들다. 박진영 주연의 영화 ‘5백만 불의 사나이’에서 주유소 미터기의 액수가 올라가는 장면, 공중전화기 금액이 0원이 되는 장면도 모두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것이다. 요즘은 CG가 들어가지 않은 한국 영화가 드물다. 칼로 찌르는 신은 배우가 손잡이만 잡고 찌르는 연기를 한다. 칼날과 튀는 피는 CG의 몫이다. ‘차형사’에서는 강지환이 술 먹고 뱉어낸 토사물을 더 지저분하게 보이도록 CG로 소시지를 추가했다. 감독이 “여기 철새 하나 날리지”라고 주문하면 창공을 비행하는 새가 생긴다. 새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CG로 ‘창조’하면 그만이다. CG면 안 되는 일도, 못할 일도 없다. 》
○ ‘타워’는 또 하나의 진일보

‘타워’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100층이 넘는 쌍둥이 빌딩 중 한 곳에서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담은 영화다. 고층 빌딩과 헬기는 모두 CG로 ‘만든’ 것이다. CJ E&M 제공
‘타워’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100층이 넘는 쌍둥이 빌딩 중 한 곳에서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담은 영화다. 고층 빌딩과 헬기는 모두 CG로 ‘만든’ 것이다. CJ E&M 제공
관객 450만 명을 모은 ‘타워’는 한국 CG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체 3000컷 중 1700컷을 CG로 만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이 “전혀 CG인 줄 몰랐다”고 하는 장면들조차 ‘가짜’가 많다.

영화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서울 여의도 63빌딩 옆 100층이 넘는 쌍둥이 빌딩 중 한 곳에서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그렸다. 여의도 야경 장면은 실제 여의도의 야경이 밋밋한 느낌이 들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의 화려한 영상을 찍어 CG로 손을 봤다. 불이 난 빌딩은 모두 CG로 만들었다. 불난 장면을 찍는다고 하니 빌려주는 빌딩이 없었다. 빌딩에 충돌해 화재를 일으키는 헬기도 그렇다.

‘타워’ 제작진은 촬영 시작 전 ‘사전 시각화(pre-visualization)’ 과정을 거쳤다. 영화 전체를 기초단계의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실사 촬영 분량과 CG로 만들 장면을 나누는 작업이다.

헬기가 폭발한 발화점에서 설경구가 창문을 깨 화염을 밖으로 유도하는 장면. 이 장면은 군데군데 불을 피운 세트에서 찍은 실사 장면과 ‘디지털 화염’을 합성한 것이다. 우선 제작진은 액화석유가스(LPG)통에 불을 붙여 만든 거대한 실제 화염을 카메라에 담았다. LPG 비용으로 400만 원이 들었다. 여기에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불을 더해 완성했다.

손예진 등 빌딩에 갇힌 사람들이 옥상에서 구조 헬기를 기다리는 장면에는 매트 페인팅(matte painting) 기술이 쓰였다. 영화에서는 수백 명이 몰린 것 같지만 실제는 배우 10여 명이 연기하고 나머지 군중은 CG로 더했다. 매트 페인팅은 경기장의 수만 관중, 사극의 궁궐 등 촬영하기 어려운 배경을 만드는 기술이다.

9·11테러 때처럼 화재로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에서는 건물 미니어처가 필요했다. 제작진은 CG와 똑같이 만든 높이 4m의 빌딩을 폭파시켜 고속 촬영했다. 미니어처 속에는 나무로 정교하게 만든 책상과 컴퓨터 등을 넣어 생생함을 더했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 등을 제작한 미국 뉴딜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디지털 기술은 자연스러운 CG를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기술이 어우러져야 명장면이 나온다. 배우들은 사전 시각화 영상을 보고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하며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한다. ‘타워’의 CG를 담당한 디지털 아이디어의 최재천 이사는 “감독과 배우의 CG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타워’는 그게 가능했기 때문에 진짜 같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고 말했다.

○ “한국 CG, 비용 대비 효과는 세계 최고 수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CG를 도입한 영화는 ‘구미호’(1994년)다. 이후 ‘퇴마록’(1998년)과 ‘자귀모’(1999년)를 계기로 CG 기술은 한 단계 성장했다. 편당 수백만 원에 불과했던 CG 비용은 ‘자귀모’에서 2억 원으로 뛰었다. 이후 ‘무사’(2001년)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디워’(2007년) ‘해운대’(2009년) 등을 만들 때마다 CG 기술도 한 단계씩 성장했다. 2011년 여름에는 한국 최초 3D 영화 ‘7광구’가 개봉했다.

현재 제작 중인 작품 중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올여름 개봉)를 제외하고 한국 영화는 모두 우리 기술력으로 만든다. 이효영 CJ파워캐스트 CG사업팀장은 “‘해운대’ 제작 당시만 해도 해일 장면을 외국 업체와 함께 작업했다.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만든다면 100% 우리 기술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제영호 매크로그래프 프로듀서는 “직원 급여나 제작 기간 등 작업 환경이 동일하다면 미국에 뒤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국의 발달한 ‘손기술’은 중국 영화의 구애를 받고 있다. 현재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청룽(成龍) 주연의 ‘차이니즈 조디악’의 CG는 한국 업체가 150만 달러(약 16억 원)를 받고 만들었다. 쉬커(徐克) 감독의 ‘용문비갑’(2011년)은 120만 달러를 받았다. 천커신(陳可辛) 감독의 ‘무협’(2011년), 다음 달 중국에서 개봉하는 저우싱츠(周星馳) 주연의 ‘서유기’ 등에도 한국 기술이 담겼다.

민병선·조이영 기자 bluedot@donga.com
#타워#컴퓨터그래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