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탑을 보는 법? 몸체에 새겨진 부조상을 읽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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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도파의 작은 거인들/유남해 주수완 지음/378쪽·2만8000원·다할미디어

인간의 몸을 아름답게 노출한 서양 미술과 달리 동양 미술에서는 주로 옷자락을 꽁꽁 싸맨 얌전한 사람을 표현한다. 그렇기에 근육질 몸을 자랑하는 금강역사(金剛力士)는 그 자체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부처의 호위병이었고 불법의 수호신이 된 금강역사는 사찰 입구와 불화뿐 아니라 탑을 장식한 작은 부조상에서도 만날 수 있다. 경북 경주 장항리사지 동·서 오층석탑 탑신(塔身·탑의 몸체)에는 여덟 쌍이나 되는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단단한 몽둥이를 든 모습에서 “불순한 무리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탑(塔)은 본디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점차 부처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지어지게 됐다. 우리는 탑의 전체 모습만 보기 마련인데, 이는 ‘반쪽짜리 감상’에 불과하다. 탑의 몸체에 새겨진 작은 부조상 하나하나에 당대의 문화가,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부조상은 인도 신화에서 차용한 팔부중(八部衆·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 동양의 시공간을 상징하는 십이지신(十二支神)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부조상을 통해 부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고 사악한 무리를 쫓아내고자 했으며 자신의 복을 빌었다.

40여 년간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촬영해온 사진작가 유남해 씨가 사진을 찍고 불교미술사를 전공한 주수완 씨가 글을 쓴 이 책은 국내의 다양한 탑에 새겨진 부조상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서양 계이름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솔도파(率堵婆)’는 탑을 뜻하는 산크리스트어인 ‘스투파’를 음역한 말이고, ‘작은 거인’은 탑에 새겨진 부조상을 의미한다. 1부에선 불탑(佛塔), 2부에선 승탑(僧塔·고승의 사리를 모신 탑)의 부조상을 다뤘다.

탑의 모양이 각각이듯, 탑에 새겨진 부조상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동일한 팔부중 부조상이라고 해도 어떤 탑은 엄숙하지만, 다른 탑은 해학적이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세워진 경북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기단(基壇)에는 십이지신과 팔부중이 새겨져 있는데, 이 부조상들은 악귀를 잡아들고 가는 모습조차도 무섭기보단 귀엽게 느껴진다. 이 같은 골계미의 비밀은 이 탑이 나라가 주도해 세운 게 아니라 승려 및 신도 1만 명이 참여해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촬영한 석탑의 부조상 사진이 책의 강점이다. 직접 탑에 가지 않고도 부조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쉽지 않다. 저자는 독자가 불교 및 한국 석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풀어간다. 예를 들어 제목의 ‘솔도파’가 스투파를 음역한 말이라는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탑신부, 옥개석, 발우, 가사, 장엄, 신원 등의 용어가 아무 설명 없이 쏟아져 나온다. 불교 미술에 대한 기초 서적을 미리 읽고 이 책을 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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