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16>눈 내리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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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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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설(小雪)입니다. 날씨가 제법 차가워지고 첫눈이 내린다는 날입니다. 깨끗한 눈이 탐욕으로 더럽혀진 세상을 덮어주면 좋겠습니다.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맑은 시도 그러한 일을 해줍니다.

이 시는 그림 그리듯이 읽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눈이 내려 온 천지가 다 하야니 흰색의 화폭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허공에 검은 점 하나를 찍고 그 아래 다시 검은 점 둘을 찍습니다. 눈이 내리면 새들은 먹이를 찾지 못하여 허공을 배회하니 그것이 허공에 찍은 검은 점이요, 돌샘은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아 검은 옷을 입은 승려가 그곳으로 물을 길러 가니 이것이 화폭 아래쪽에 찍어놓은 두 개의 검은 점이겠지요.

검은 점 몇 있고 온통 흰빛이던 화폭의 풍경이 점차 또렷해집니다. 먼 들판 너머로 날아가는 까마귀와 개울 곁에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둥치가 꺾어진 버드나무가 보입니다. 눈 덮인 숲도 보이고 깡깡 언 개울도 드러납니다. 이제 풍경이 환해졌습니다. 그러나 좀 춥습니다. 이렇게만 끝내면,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 버들처럼 춥고 까마귀처럼 배고프겠지요. 인정 많은 시인은 이렇게 시를 끝내지 않습니다. 시인은 숲 너머로 연기를 피워 올렸습니다. 물론 그림에는 초가를 그리지 않았겠지요. 이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입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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