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달달한 소품 대신 정통 클래식의 맛 지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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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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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FM‘명연주 명음반’ 10년 진행한 음악칼럼니스트 정만섭 씨

27일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명연주 명음반’ 진행자 정만섭 씨는 “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질문도 감상주의적이거나 문학소녀풍이면 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7일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명연주 명음반’ 진행자 정만섭 씨는 “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질문도 감상주의적이거나 문학소녀풍이면 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바흐의 영국 모음곡 6번 d단조 바흐 작품번호 811.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로 함께 하셨습니다. 이어서 모차르트의 현악사중주 17번 B플랫장조 쾨헬 458. ‘사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죠. 아마데우스 스트링 콰르텟의 1951년 모노 레코딩입니다.”

미사여구는 없다. 간결하고 정갈한 설명이 음악과 음악을 잇는다. KBS 1FM(93.1MHz) ‘명연주 명음반’(매일 오후 2∼4시)을 진행하는 음악칼럼니스트 정만섭 씨(49)의 스타일은 지난 10년간 한결같다.

그는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뒤 음악전문지 기자와 편집장을 거치며 KBS 1FM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음반 소개 코너를 맡다가 2000년부터 1FM ‘실황음악회’를 진행했고, 2002년 10월 21일부터 ‘명연주 명음반’을 이끌어오고 있다.

“음악 감상에서 감상주의(感傷主義)를 아주 싫어합니다. ‘소녀 중에 제일 싫은 소녀가 문학소녀’라고 자주 말할 정도로요. 청취자들이 프로그램 게시판에 감상적인 글을 올리기보다는 음악에 집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음악은 이성적으로 감동하는 것이니까요.”

명연주 명음반은 클래식 전문 채널인 1FM에서도 정통 클래식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2시간 방송에 보통 5곡 정도가 나간다. 한 곡을 온전히 들려주는 전곡 감상이 기본이다. 선곡도 그가 직접 한다. 방송에 나가는 음반은 대부분 정 씨 자신의 것이다. 따로 방송 원고를 준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곡명과 연주자만 간략히 소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품의 문화사적 배경이나 음반과 연주자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놓을 때도 있다.

“마니아 대상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들을 능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음반이 나오면 되도록 빨리 구해서 들어보고 판단해야 하니까 KBS 자료실에 음반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죠. 방송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곡을 트는 게 원칙이지만 ‘나만 좋아서는 안 된다’를 되뇌며 최대한 객관화시킨 제 취향을 반영합니다.”

그가 이 프로그램을 꾸리는 원칙은 ‘메뚜기 잡을 생각 말고 울타리 안의 양을 잘 키워야 한다’는 것.

“첫 곡은 항상 시원하거나 부드럽고, 소품류여야 한다는 고전음악 방송의 공식이 싫습니다. 처음부터 베토벤의 ‘운명’,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처럼 자극적인 작품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줘야 합니다. 그것이 정공법이지요. 때로 재즈밴드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바흐 골드베르크 같은,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를 선곡하기도 하지만요.”

정 씨만의 색깔이 두드러진 진행과 선곡은 음반시장을 움직인다.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지휘자 르네 레이보비츠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그가 일주일 동안 9곡 전곡을 소개한 뒤 1500세트가 순식간에 팔렸다. 첼리스트 장막스 클레망과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포더처럼 잊혀진 연주자들의 음원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교보문고 음반매장 ‘핫트랙스’와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명연주 명음반 코너도 생겨났다. 한 애청자는 방송 내용을 소개하는 트위터 계정 ‘정만섭봇(@kbs1fmbest·‘정만섭로봇’의 준말)’을 만들었다.

“음악 작품이나 이론에 대해서는 저보다 설명을 잘하는 분이 많습니다. 제 역할은 수많은 음반을 거르는 겁니다. 오래 하다 보니 동그란 것만 보면 ‘저거 좋겠다’ 등등 감이 옵니다. 명곡의 다양한 해석을 비교 감상하는 것이 음악 감상의 궁극적인 매력이고, 그것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명연주 명음반입니다.”

정 씨의 진행 10주년을 기념해 16일 오후 7시 반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는 ‘명지휘자들의 명장면’이라는 제목으로 특집 공개방송이 열린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귄터 반트, 레너드 번스타인 등 지휘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감상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의 연주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을 듣는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클래식#정만섭#음악칼럼니스트#명연주 명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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