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추석]호텔 주방서 꽃피운 18일간의 사랑… 바다 건너 ‘부부의 연’을 맺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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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좋은 셰프-멕시코 몬세란트 피녜이로 셰프의 매콤-달콤한 사랑이야기

한좋은 밀레니엄서울힐튼 셰프(왼쪽)와 그의 아내 몬세란트 피녜이로 셰프가 2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밀레니엄서울힐튼 야외 정원에서 마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둘은 단 한 번의 데이트로 연인이 된 뒤 1년 넘게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다 1월 결혼에 골인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한좋은 밀레니엄서울힐튼 셰프(왼쪽)와 그의 아내 몬세란트 피녜이로 셰프가 2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밀레니엄서울힐튼 야외 정원에서 마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둘은 단 한 번의 데이트로 연인이 된 뒤 1년 넘게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다 1월 결혼에 골인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미안하지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요. 11월 한국에 가지 못할 것 같아요. 전 프랑스에서 일을 시작하려고 해요. 당신과 결혼을 해 당신의 아이를 갖는 삶을 꿈꿔 왔지만 신이 도와주지 않네요.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날 날이 오길 기도할게요.”

작년 9월 26일 한좋은 밀레니엄서울힐튼 헤이스트리 셰프(34)는 몬세란트 피녜이로 멕시코시티힐턴 셰프(32·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e메일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 특급호텔 만다리나 오리엔탈 호텔의 셰프로 취직했다고. 1년 2개월 만에 재회하겠다는 꿈이 물거품이 됐다.

다음 날 한 셰프는 답장을 보냈다. 사랑 대신 꿈을 택하라고. “유럽 가면 식사, 건강, 휴식 등 잘 챙겨요. 많이 힘들겠지만 극복하면 더 좋은 뭔가가 찾아올 거예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 다시 e메일을 보냈다. “유럽에 가지 말고 나에게 와 줬으면 해요. 꿈이 아닌 현실에서도 당신과 언제나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길 원해요.”

약 두 달 뒤 피녜이로 셰프는 정말 한국에 왔다. 1월 27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한 셰프와 부부의 연을 맺고 누나가 넷이나 있는 경상도 남자의 아내가 됐다. 지금은 임신 7개월째다. 이번 추석엔 처음으로 경남 하동군 시댁에서 한국의 명절을 맞이한다.

인사동,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

피녜이로 셰프가 처음 한국에 온 때는 2009년 9월이다. 밀레니엄서울힐튼이 멕시코 요리 행사를 열었을 때 멕시코시티힐턴에서 일하던 피녜이로 셰프가 요리를 맡으면서다. 그때만 해도 한 셰프와는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피녜이로 셰프는 “한국에 오기 전 내가 한국에 대해 알던 것은 개고기, 1988년 서울 올림픽과 6·25전쟁, 멕시코에 있는 포스코뿐이었다”며 “그러나 와보니 한국은 현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고궁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2010년 9월, 피녜이로 셰프가 멕시코 요리 행사로 두 번째 서울에 왔을 때 둘은 베이커리 주방에서 처음 만났다. 피녜이로 셰프는 속으로 한 셰프는 키가 크면서 친절하고 미소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한 셰프도 피녜이로 셰프에 대해 예쁘고 성격이 밝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첫눈에 반했다.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한 쪽은 한 셰프였다. “청계천 가본 적 있어요? 안 가봤으면 청계천 갔다가 점심 같이할래요?” 피녜이로 셰프는 “가봤다”라고 답하곤 이내 후회했다. 안 가봤다고 했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다음 날 피녜이로 셰프가 데이트를 신청했다. “저 인사동 안 가봤어요.”

며칠 뒤 그들은 인사동에 갔다. 피녜이로 셰프가 멕시코에 돌아가서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을 샀고 길거리 공연도 봤다. 저녁은 한 선술집에서 먹었다.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이어진 대화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한 셰프는 “멕시코에 돌아가더라도 e메일, 전화로 자주 연락하며 서로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였다.

피녜이로 셰프의 송별회 날 한 셰프는 ‘나를 기억해줘요’라고 적혀있는 향수를 선물했다. 그렇게 18일이 지나갔고 피녜이로 셰프는 멕시코로 돌아갔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e메일로 근황을 주고받았다. 전화를 할 땐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전화비가 너무 많이 나오자 스카이프(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서툰 한 셰프는 종종 피녜이로 셰프가 보낸 메일을 구글 번역기를 돌려 읽었다. 가끔 한 셰프가 답답한 마음에 한국어로 e메일을 보내오면 피녜이로 셰프는 한국인 친구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2시간 전에 멕시코에 도착했어요. 가족들에게 당신이 준 향수를 보여줬어요. 내일 이 향수를 뿌리고 하루 종일 당신을 생각할게요. 피녜이로.”(2010년 9월 19일)

“오늘 슈퍼마켓에 갔다가 한국인 부부와 아들을 만났어요. 남자친구가 경상도 남자라고 하니까 그들은 경상도 남자들은 표현이 서툴지만 가슴이 넓다고 하더군요. 그 아들이 당신과 닮아서 당신 생각이 많이 났어요. 피녜이로.”(2011년 3월 14일)

“요즘 일이 많아서 바쁘고 피곤하다는 편지에 많이 걱정돼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해요. 피곤하고 입맛 없다고 식사 거르지 마요. 한.”(2011년 8월 14일)

“어젯밤 꿈에서 자기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거리를 걷는 꿈을 꿨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자기가 방금까지 내 옆에 있었다는 생각에 더욱 보고 싶네요. 한.”(2011년 9월 9일)

한국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

작년 11월 피녜이로 셰프는 프랑스의 새로운 직장 대신 한 셰프를 선택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멕시코와 프랑스를 오가며 쌓았던 학력과 경력, 새로운 기회를 뒤로하고 서울에 온 것은 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피녜이로 셰프는 한 셰프의 가족을 처음으로 만났다.

“멕시코에서도 시어머니는 원래 무서운 존재예요. 어머니를 처음 만날 때 많이 긴장했지만 친절하게 대해주셨어요. 언어가 잘 안 통하다 보니 지금도 항상 남편이 통역을 해줘요. 어쩌면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고부 갈등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결혼식은 최대한 검소하게 치렀다. 그는 “멕시코에서는 결혼을 할 때 두 집안이 예의상 선물을 주고받긴 하지만 한국의 예단처럼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진 않는다”며 “비용을 아끼려고 예단을 생략했고 반지도 다이아몬드 대신 소박한 커플링을 맞췄다”고 말했다.

타지 생활이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피녜이로 셰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한국 사람들이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생각이 아주 열려 있었다”며 “미국과 달리 개인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성향은 오히려 멕시코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혼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오히려 예쁘다고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것 같아 아이에게도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음식도 입에 잘 맞는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비빔밥. “여태껏 만나본 외국인들은 비빔밥을 다 좋아했어요. 신선한 야채들이 따뜻한 밥과 어우러져 아주 건강한 맛을 내거든요. 또 멕시코에선 깻잎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깻잎에 불고기와 생마늘을 얹어 싸 먹어보니 정말 맛있더라고요.” 그는 김밥, 만두, 통마늘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밀레니엄서울힐튼에서 단기계약직으로 세 번째 멕시코 요리 행사를 이달 한 달간 진행하고 있다. 행사가 끝나면 일을 그만두고 한국 전통음식을 공부해 볼까 생각 중이다.

처음 맞는 명절, 추석

피녜이로 셰프에게 이번 추석은 사실상 처음으로 맞이하는 명절이다. 설날(2월 10일) 연휴엔 한 셰프가 내내 출근을 하는 바람에 피녜이로 셰프는 집에만 있었다. 그래서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는 기억밖에 없다. 올 추석에는 시댁에 내려가 3일 정도 머물 생각이다.

그는 이번 추석에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 했다. “남편의 부모님과 누나들 부부, 시조카 9명이 한자리에 모여 명절을 함께 보낸다는 점에선 기대가 돼요. 그렇지만 10시간이나 걸릴 귀성길, 아직 덜 친해진 시댁 식구들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네요.”

한 셰프의 집은 기독교 집안이라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다만 한 셰프의 어머니가 명절 음식을 간소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피녜이로 셰프는 “한국 전통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난 요리사이니 시어머니를 잘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시댁 식구들이 나에 대해 좋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과는 스카이프 화상 통화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가 아이를 낳을 12월 말에 부모님이 한국에 올 예정이다.

한 셰프는 올 한 해가 유난히 특별하다고 했다. “다음 달 이사를 합니다. 원래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 63m²(약 19평)짜리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내가 다니는 산부인과와 조금 더 가까운 곳에 83m²(약 25평)짜리 아파트로 넓혀서 갑니다. 1월 27일 결혼했고 12월 23일엔 부모가 될 거예요. 올해는 우리 부부가 정말 많은 것을 이루는 한 해네요.” 그의 얼굴에선 인터뷰 내내 싱글벙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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