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을 거닐어 석파정 다다르니 이중섭이 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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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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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개관 기념전

29일 개관하는 서울미술관에서는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석파정’의 전통가옥을 중심으로 인왕산의 빼어난 풍광과 미술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미술관 제공
29일 개관하는 서울미술관에서는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석파정’의 전통가옥을 중심으로 인왕산의 빼어난 풍광과 미술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미술관 제공
인왕산 북동쪽 자락의 늠름한 바위와 푸른 숲이 어우러진 길을 걷다 보면 깊은 산중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물소리가 청량한 계곡에 있는 중국풍 정자를 지나면 신라 석탑과 ‘巢水雲簾菴(소수운렴암·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이란 글을 새긴 바위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산책길이 끝나는 곳에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썼던 석파정(石坡亭·서울시 유형문화재 26호)이 고즈넉한 자태를 드러내고, 그 옆에는 현대적 미술관이 서있다.

29일 개관을 앞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서울미술관(관장 이주헌)은 빼어난 입지를 배경으로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 미술 등 3색 볼거리가 모인 곳이다.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6000만 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황소’. 서울미술관 제공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6000만 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황소’. 서울미술관 제공
서울미술관에는 조선 후기에 지은 석파정이 포함된 대지 4만3000m²(약 1만3000평)에 지상 3층, 지하 3층의 미술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1, 2층 전시장 면적은 500여 평 규모이며 미술관의 옥상정원을 통해 석파정으로 연결된다.

개관기념전에서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6000만 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황소’가 경매 이후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다는 점도 관심을 모은다. 개관기념전은 11월 21일까지. 청소년 5000원, 어른 9000원. 02-395-0100

제약사 영업사원, 꿈 이루다


자연과 예술,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립미술관의 탄생에는 설립자인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55)의 삶과 꿈이 오롯이 녹아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인 1983년 그는 비를 피하러 액자가게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이중섭의 ‘황소’를 보게 된다. 작품의 에너지에 끌렸던 그는 수중의 돈 7000원을 털어 복제사진을 샀고 그날 저녁 아내에게 “언젠가 진품을 사서 선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도 이중섭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1985년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이중섭과 가까웠던 구상 시인(1919∼2004)을 이웃으로 만난 것이다. 시인에게서 화가의 고달픈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1988년 의약품 유통회사를 차린 뒤 1990년대 중반부터 이중섭 작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0년 ‘황소’를 구입해 약속을 지켰다.

2007년 그는 사옥을 짓기 위해 석파정 터를 65억 원에 사들였으나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건물이 있어 미술관밖에 지을 수 없었다.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한 그는 자신이 30여 년간 모은 미술작품 100여 점을 세상과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게 된다.

그 옛날 이중섭과 벗들을 만나다


서울미술관에는 과거의 역사, 오늘의 문화가 서로 소통하며 호흡한다. 수려한 풍광과 어우러진 석파정은 조선 말기 세도가였던 김흥근이 건립한 전통가옥이다. 훗날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해 석파정이란 이름을 얻었다.

개관기념전인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전과 이대원 천경자 남관 변종하의 대작을 소개한 상설전도 알차다. 개관기념전에선 이중섭의 ‘자화상’ ‘길 떠나는 가족’ ‘닭과 가족’ 등 34점을 포함해 쉽게 만나기 힘들었던 근현대 대가들의 작품 73점을 볼 수 있다. 이는 1952년 11월 부산 르네상스 다방에서 이중섭 한묵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의 동인전인 ‘기조’전이 열린 것을 기념해 5명의 동인과 유화 목판화 도예 비평 등 다방면에 능했던 정규의 작품을 함께 조명한 자리다. 초대관장 이주헌 씨는 “이들은 우리 미술의 르네상스가 도래하리라는 희망으로 간난의 세월을 꿋꿋이 견뎌냈다”며 “오늘의 거름이 되고 뿌리가 된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전시”라고 소개했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서울미술관#부암동 서울미술관#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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