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최남단 마라도 ‘창작 스튜디오’로 자발적 유배 떠난 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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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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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절된 외딴 공간… 지독한 고립에서 문학이 태동하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 있는 마라도 창작스튜디오에서 자발적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문인들. “덥고 습하고 불편하지만 막상 떠나면 이곳이 그리워질 것 같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소설가 조중연 이우상, 시인 조동례 장이엽, 소설가 정찬 마윤제 씨. 마라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 있는 마라도 창작스튜디오에서 자발적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문인들. “덥고 습하고 불편하지만 막상 떠나면 이곳이 그리워질 것 같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소설가 조중연 이우상, 시인 조동례 장이엽, 소설가 정찬 마윤제 씨. 마라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검은색 화산섬. 물도, 먹을 것도 귀한 그곳. 조선시대 제주도는 천형의 유배지였다. 하지만 극한의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맑아진다. 예술은 척박함 속에서 더 아름답게 피어난다. 추사 김정희도 유배 갔던 제주에서 세한도와 추사체를 완성했다. 제주가 그럴진대 마라도는 어땠을까. 국토 최남단 마라도는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이 풀밭뿐인 섬이다. 살갗을 찢는 듯한 한여름의 햇빛, 머리를 풀어헤치는 거센 바람, 짙은 연무가 지배하는 곳. 이 마라도로 ‘자발적 유배’를 떠난 문인들이 있다.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이다.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23일, 뜨겁게 달아오른 마라도를 찾아 이들을 ‘면회’했다. 》
작가들이 생활하고 있는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건물. 5개의 방가운데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는 ‘스위트 룸’에는 입주 작가 중 문단 최고참인 정찬이 묵고 있다. 마라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작가들이 생활하고 있는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건물. 5개의 방가운데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는 ‘스위트 룸’에는 입주 작가 중 문단 최고참인 정찬이 묵고 있다. 마라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마라도 창작스튜디오는 지난해 문을 열었다. 마라도 내 유일한 절인 기원정사의 단층 건물 하나를 빌렸다. 본디 이 공간은 육지에서 온 신도들이 하루 이틀씩 묵었던 곳.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부가 국내 최남단에 문학의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집필실로 새로 꾸몄고, 타지 문인들에게도 개방했다.

문인들을 위한 창작실은 전국 곳곳에 있다.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 인제군 만해마을,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육지와 섬은 다르다. 자발적으로 들어왔어도, 바람만 조금 거세도 배가 뜨지 않는 마라도에선 고립감이 더 심하다. 작가들은 왜 외딴섬에 스스로를 결박했을까.

마라도에서 20여 일을 보낸 소설가 정찬은 이렇게 말했다. “최남단의 섬에서 보내는 고립된 유배의 시간에 끌렸다. 작품을 쓰려면 일상적 자아와 단절하는 게 필요하다. 마라도는 이런 단절적 시간을 경험하기에 최적이다.”

지난해 소설가 한창훈, 김도연 등 문인 12명이 이곳을 찾았고, 올해는 6월부터 12월까지 15명이 이곳을 찾는다. 기간은 최대 두 달. 기자가 찾았을 때는 정찬을 비롯해 소설가 이우상 마윤제, 시인 조동례 장이엽이 있었다. 객지 손님을 반가워하는 것을 보니 섬사람들이 다 돼 있는 듯했다.

작가들은 강렬한 자극에 끌린다. 마라도가 보여주는 자연은 충격적이었다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잔디와 바다, 하늘은 온통 푸르고 핏빛 노을은 선연했다. 하얀 보름달은 티 없이 맑았다. 지난주 태풍 ‘카눈’이 지나갔을 때는 출입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셌고, 성난 파도는 조그만 섬을 집어삼킬 듯했다. 일기예보를 통해 태풍을 접하는 도시인들과 달리 작가들은 벗겨진 채로 자연의 가공할 힘을 몸소 느꼈다. “마라도의 주인은 비, 안개, 바람이에요. 이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누가 들어올 수도, 살 수도 없죠.”(조동례)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건물은 남루하다. 어른 두 명이 누우면 가득 찰 듯한 2평 남짓한 방 5개. 방 안에는 습기와 더위를 잠시 잊게 하는 에어컨, 그리고 책상과 작은 서랍장이 전부다. 식사는 창작스튜디오의 기획자이자 소설가인 조중연이 마련하지만 설거지는 입주 작가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한다. 청소도 작가들 몫이다. 이날 점심 반찬은 된장을 푼 오이냉국, 감자볶음, 멸치볶음, 갈치구이, 호박볶음, 파무침이었다. 모두들 달게 비웠다.

마윤제는 “하도 답답해서 며칠 전 이틀간 서울에 갔다 오는 ‘탈출’을 했다. 하지만 서울 가니 마라도가 그립더라”며 웃었다. 이 말을 들은 정찬이 끼어들었다. “하필이면 설거지 당번 날 도망을 치냐. 결국 내가 했어.”

많게는 하루 4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마라도를 찾는다. 배의 귀항 시각에 마음이 급한 관광객들 대개 30, 40분 들여 마라도를 한 바퀴 돌고,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운 뒤 떠난다. 정작 문인들 가운데서는 짜장면 사 먹은 사람이 없다. 마라도 속에서도 고립을 택했기 때문이다. 대신 글은 막힘없이 풀렸다. 정찬은 문예지에 넘길 단편소설을 마감 일주일 전에 완성했고, 장이엽은 마라도에서 한 달을 보내며 시 초고 50여 편을 썼다. 기원정사 해월 스님은 “척박한 마라도에 문화공간이 생겨났다”며 섬의 변화를 반겼다. 한반도의 마침표인 마라도에서 그렇게 새로운 문학적 성과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라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마라도#마라도 창작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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