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침묵, 캐내지 못해… ‘칼의 노래’는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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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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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훈, 충무공 옛집서 시민들과 ‘고택정담(古宅情談)’

소설가 김훈의 특별 강연이 열린 충남 아산시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의 옛집은 충무공이 21세에 결혼해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11년간 살면서 무술을 연마했던 곳이다. 김훈은 충무공의 고택에서 “대학 시절에 읽었던 ‘난중일기’가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털어놓았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제공
소설가 김훈의 특별 강연이 열린 충남 아산시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의 옛집은 충무공이 21세에 결혼해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11년간 살면서 무술을 연마했던 곳이다. 김훈은 충무공의 고택에서 “대학 시절에 읽었던 ‘난중일기’가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털어놓았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제공
26일 충남 아산시 충무공 옛집을 찾아 소설 ‘칼의 노래’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은 김훈.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제공
26일 충남 아산시 충무공 옛집을 찾아 소설 ‘칼의 노래’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은 김훈.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제공
“22세에 읽은 난중일기가 제 인생을 뒤바꿔 놓았죠. 난중일기의 진실하고 깔끔한 문장은 저를 ‘미치게’ 했어요.”

소설가 김훈(64)이 26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충무공의 옛집에서 ‘칼의 노래―내가 만난 이순신’을 주제로 100여 명의 독자와 만났다. 임진왜란이 발발(1592년 5월 23일 음력 4월 13일)한 지 420주년이 되는 임진년을 맞아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마련한 자리였다.

이 옛집은 충무공이 21세에 상주 방씨와 혼인해 물려받은 처갓집이다. 32세 때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이곳에 살며 무술을 연마했다.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평가를 받은 소설 ‘칼의 노래’가 잉태된 곳이기도 하다. 김훈은 이 소설을 쓸 때 ‘여러 번 현충사에 와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갔다’고 했다. 툇마루에 걸터앉은 그는 덕지덕지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자신의 ‘난중일기’를 꺼내 한 대목씩 짚어가며 강의를 이어갔다.

“대학에서는 고매하고 아름다운 영시들을 무작정 외웠어요. 아편처럼 빠져들었지요. 하지만 도서관에서 굴러다니던 ‘난중일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난중일기는 심오한 논리나 사유가 들어 있는 철학책, 역사책이 아닙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장군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진중일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희망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절망의 시대를 절망으로 돌파하는 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담겼죠. (이에 비해) 영시는 세상의 고통과 모순, 야만성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를 중퇴했다.

김훈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음악적인 문체도 ‘난중일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진실성이 담긴 난중일기의 문장을 보고 젊은 시절 많이 울었어요. 이순신의 글은 세상에 공개할 의도가 없이 쓴 글이어서 엄정하고 꾸밈이 없습니다. 주어와 동사만 가지고도 훌륭한 문장을 썼지요.”

그는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하게 장악하게 되는 어느 날, 이순신이라는 사내의 내면에 대해 무언가를 쓰거나 말하게 되리라’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01년 두 달 만에 ‘칼의 노래’를 완성했다.

김훈에게 충무공은 ‘두려움에 떠는 인간을 설득해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리더십의 소유자’이고 ‘정치적인 감각 없이 순결하게 군인의 길을 걷던 사람’이다. 또 ‘양극단의 태도를 하나의 인격에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130번이나 군법을 집행하며 부하를 죽이고 곤장을 때리고 옥에도 가뒀죠. 하지만 하층민이 사망하면 나이, 출신, 무슨 역할을 하다가 사망했는지까지 챙기는 자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날 그는 “‘칼의 노래’는 미완성”이라고 말해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충무공의 침묵을 묘사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죄 없이 박해당하고, 문신 세력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을 만한 상황에서도 그는 모욕감이나 치욕에 대해 어디에도 기록하거나 말하지 않았죠. 정치적인 원한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그 침묵의 내면을 묘사하려고 했지만 기진맥진했고,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미완의 글임에도 ‘칼의 노래’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묻자 “독자들의 내면에도 나와 똑같은 억눌린 갈증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답했다. “절망적이고 야만적인 상황을 묘사한 제 글이 쉽고 편한 글은 아니거든요. 나에게 글이란 희망보다는 암울한 이 세계의 야만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산=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김훈#난중일기#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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