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전 고려인, 참돔 - 넙치 - 전복 - 농게도 젓갈로 담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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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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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문화재硏, 난파선서 발굴한 항아리 103점 분석

《 “물 항아리는 도기다. 몸체는 넓고 목으로 가면서 줄어드는데 주둥이가 약간 넓다. 높이 6자이고 너비는 4자 5치인데 3섬 2되가 들어간다. 관사 안에서는 구리 항아리(銅甕)를 쓴다. 섬들 간에 배로 물을 실어 나를 때 이 물 항아리를 사용한다.” 고려 인종 원년인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를 다녀간 뒤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배에 실었던 도기 항아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해역에서 건져 올린 고려 도기 항아리들. 사진 속의 가장 큰 항아리는 용량이 약 170L로 배의 식수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300여 조각이 난 것을 6개월에 걸쳐 조합해 복원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해역에서 건져 올린 고려 도기 항아리들. 사진 속의 가장 큰 항아리는 용량이 약 170L로 배의 식수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300여 조각이 난 것을 6개월에 걸쳐 조합해 복원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해역의 고려시대 난파선(마도 1, 2, 3호선)에서 발굴한 도기 항아리 103점을 연구하면서 고려도경의 물 항아리 사용법을 비롯해 800년 전 고려인의 생활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함께 나온 목간(글이 적힌 나무 조각)에 따르면 마도1호선이 난파된 해가 1208년이다.

▶ 본보 2011년 10월 7일자 A16면 고려땐 ‘개고기포’도 공물이었다…

우선 고려인들이 젓갈로 담가 먹었던 생선의 종류가 밝혀졌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개펄에 묻혀 있던 항아리 속에 생선뼈와 게·새우 껍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난파선에서 나온 목간에는 물고기 게 전복 젓갈을 담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전문가들이 뼈의 구조와 단면을 분석한 결과 밴댕이 정어리 조기 전어 참돔 넙치의 뼈였다. 껍질은 농게의 것이었다.

항아리는 나무마개로 입구를 막은 뒤 짚으로 빈틈을 메웠고, 항아리와 항아리 사이에도 짚을 넣어 깨지지 않도록 했다. 젓갈이 아닌 어류로는 상어의 뼈가 나왔다. 이는 대나무 바구니에 담긴 채 발견됐다. 말린 상어고기를 대바구니에 담아 운송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홍합젓갈과 전복젓갈, 살아 있는 전복 100개를 담았다는 기록이 적힌 목간도 나왔다.

다음은 항아리의 크기다. 서긍은 식수를 큰 항아리에 담아 운항한다고 기술했는데, 실제로 용량이 170L에 이르는 대형 항아리가 나왔다. 이 항아리는 돛이 있는 중심부에서 발견됐다. 배의 가장 안전한 장소에 놓고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항아리들은 용량이 18L, 10L, 4L 등 3종류로 부피가 일정했다. 깨진 항아리는 3차원 컴퓨터 그래픽으로 용량을 추정했다. 임경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형태는 다르더라도 도기 항아리를 만들 때 도량형에 따라 일정한 부피를 갖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는 장인들이 모양이 나쁜 도자기를 가마에서 꺼내자마자 깨뜨리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마도선에서는 모양이 울퉁불퉁한 못난이 도기들도 나왔다. 모양이 나빠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사용했던 고려인의 실용성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9일 오전 11시 충남 태안군 마도면 태안보존센터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올해 마도해역 수중발굴조사 개수제(開水祭)를 연다. 수중 발굴의 안전을 빌고 문화유산의 보고인 고려 배를 추가로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행사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고려인#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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