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한류를 이끄는 학자들]<3> 민원정 칠레가톨릭대 역사학과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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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인재들, 칠레 최고 명문대서 ‘한글 천지인 사상’ 연구해요”

칠레가톨릭대(UC) 산호아킨 캠퍼스에서 밝게 웃는 민원정 교수. 그는 “가족도 없이 여기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 자신을 발견한 곳이 바로 칠레”라고 했다. 파울리나 김 제공
칠레가톨릭대(UC) 산호아킨 캠퍼스에서 밝게 웃는 민원정 교수. 그는 “가족도 없이 여기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 자신을 발견한 곳이 바로 칠레”라고 했다. 파울리나 김 제공
지구 반대편 도시인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는 늦여름의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 작업하던 인부들, 나른한 개들까지 나무 그늘에 드러누워 더위를 식혔다. 이 도시에 한글의 천지인 사상을 분석하거나 한국 샤머니즘을 칠레 원주민 신앙과 비교하는 칠레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이곳에서 만난 민원정 칠레가톨릭대(UC) 역사학과 교수(45·여)는 9년째 칠레에서 ‘남미 한국학’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그는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사로 일하던 중 2003년 자료 수집을 위해 처음 칠레를 방문했다. 일주일간 머무르니 자신이 할 일은 칠레에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다른 중남미 국가에 비해 대학 인프라가 좋고 학구적인 분위기여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새롭게 해보고 싶었어요. 한국에 교수 자리가 없다고 절망하기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깜냥이 닿는 데까지 한국학을 알리자고 결심했죠.”

칠레의 여러 대학에 한국학을 강의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냈고 한 지방대에서 강의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2004년 2월 짐을 싸 칠레에 왔으나 그 대학의 ‘아시아학센터’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었다. 그 후 6개월간 여러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강의료도 안 받고 특강을 하거나 수업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마침내 칠레 지방대 두 곳에서 정규교양과목으로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의를 개설했다. 칠레 최고 명문 UC의 아시아학 프로그램에서 매주 4시간 학습지도(team teaching)도 맡았다.

그는 칠레의 대학에 별다른 동아리 활동이 없음을 알고는 UC에 ‘스터디그룹 아시아’라는 학생 동아리를 만들었다. 아시아에 대해 토론하고 각국 전통놀이도 즐기는 동아리다. 이때부터 UC는 그에게 ‘아시아학 프로그램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줬고, 2006년에는 교수로 임명했다.

UC에는 한국학과가 없다. 그 대신 민 교수는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강의한다. 한국 여성을 순종적 이미지로만 보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역사 속 한국 여성’이라는 강의를 만들어 ‘인현왕후전’을 읽히거나 한국인 여검사와 여경을 강단에 초청하기도 한다. ‘한국문화와 한국어’ 수업시간엔 학생들이 가상 6자회담을 벌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관계를 거시적으로 보도록 돕는다.

2007년부터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매년 한국학 논문대회를 개최한다. 매년 학생 10여 명이 한국 기업의 칠레 진출, 한국의 온라인게임 등 다양한 주제의 논문을 내고 있다. “UC에는 칠레뿐 아니라 남미와 미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습니다. 미래의 리더들에게 한국학을 알린다는 보람이 크죠.”

2008년부터는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국제 한국학 학술대회를 개최해 한국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큰 관련이 없는 이곳에 한국학을 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칠레에서 학생들에게 한국학을 연구하게 할 유인책이 마땅치 않아요. 장기적으로 국가 이미지 개선, 문화콘텐츠 발전, 양국 교류 증진 등을 병행해 자연스럽게 한국학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칠레의 일부 마니아층에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케이팝 한류가 당장 한국학에 대한 관심으로 직결되긴 어렵다는 게 민 교수의 생각이다. 칠레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중산층 이상이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알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

그는 요즘 한국학중앙연구원 프로젝트로 다른 학자들과 함께 스페인어권에 특화한 한국학 교재를 개발 중이다. 인사법에 나타난 한국과 칠레의 문화 차이도 연구하고 있다.

“저는 칠레에서는 한국학자, 한국에 가면 중남미학자예요. 한국과 중남미의 문학과 문화를 비교 연구하는 게 본래 역할이죠.” 그는 작지만 차근차근 한국학 프로그램을 일궈나갈 수 있어 기쁘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민원정 교수는 ::

△1967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학사 석사 박사(중남미문학) △한국외국어대, 한중남미협회, 단국대, 선문대 강사 △칠레마리티마대, 발파라이소가톨릭대 강사, 칠레가톨릭대 아시아학 프로그램 연구원 △2006년∼ 칠레가톨릭대 역사학과 교수, 아시아학센터 집행위원

산티아고=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민원정#칠레가톨릭대#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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