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그림 좋아했던 정조 마음 몰라… 신윤복의 화가아버지는 귀양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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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박물관 ‘책거리 특별전’

조선 최고의 책거리 화가로 꼽히는 이응록의 ‘책가도’. 그가 이응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1864∼1871년에 그린 6폭 병풍으로, 쌓여 있는 서책과 고동, 꽃, 각종 기물 등을 표현했다. 경산시립박물관 소장. 경기도박물관 제공
조선 최고의 책거리 화가로 꼽히는 이응록의 ‘책가도’. 그가 이응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1864∼1871년에 그린 6폭 병풍으로, 쌓여 있는 서책과 고동, 꽃, 각종 기물 등을 표현했다. 경산시립박물관 소장. 경기도박물관 제공
“화원 신한평(신윤복의 아버지)과 이종현(이응록의 할아버지) 등은 각자 원하는 것을 그려 내라는 명이 있었으면 책거리(冊巨里)를 마땅히 그려내야 하거늘, 모두 되지도 않은 다른 그림을 그려내 실로 해괴하니 함께 먼 곳으로 귀양 보내라.”

조선 정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의 규장각 일기인 ‘내각일력’에 기록된 정조의 명이다. 책거리란 책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으로, 중국 청나라 때의 장식장인 다보격이나 다보각을 그린 것을 그 기원으로 본다. 한국 역사에서는 정조(재위 1776∼1800)의 주도로 시작됐다. 정조는 창덕궁 규장각의 조직으로 ‘자비대령화원’이라는 궁중화원제도를 운영하며 화원들에게 책거리를 그리도록 지시했다. ‘내각일력’에 기록된 일화는 책거리를 창안한 정조의 뜻을 알아서 받들지 않은 신한평과 이종현의 행동이 정조의 분노를 샀음을 보여준다. 그토록 정조는 책과 학문, 책거리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것이다.

경기도박물관이 6월 10일까지 조선시대와 현대의 책거리 작품 50여 점을 소개하는 ‘책거리 특별전: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를 연다. 21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 기념 학술강연회에서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조선시대 책거리의 유행은 책과 학문을 숭상했던 당시 사회와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책거리의 역사,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발표한 정 교수는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를 인용하며 “정조는 ‘후세의 병든 글’을 바로잡기 위해 책거리를 그리게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후세의 병든 글’이란 명말청초에 유행한 문집, 소품, 패관잡기, 소설, 고증학 등을 가리킨다. 정조는 이러한 통속적인 글들이 정통의 고전적 문체를 오염시켜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된 국가체제를 위협한다고 보았다.

정 교수는 “정조는 학문 진흥을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고 과거에 합격한 신진 관료를 재교육시키는 초계문신제를 운영하는 등 학문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문체를 통해 사대부의 학풍을 바로잡으려는 문풍 혁신운동인 ‘문체반정’으로 왕권 강화를 꾀했다”며 “책거리는 정조의 문치주의와 왕권 강화를 위해 제작된 궁중회화”라고 설명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봉도나 십장생도 병풍을 놓는 것이 관례였지만 정조는 이례적으로 어좌 뒤에 책거리를 세웠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김홍도는 책거리로 명성이 높았으나 현재 그의 책거리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해도(물고기와 게 등을 그린 그림)로 유명했던 화원 장한종이 그린 ‘책가문방도’ 병풍을 볼 수 있다. 장한종은 신한평과 이종현이 책거리를 그리지 않아 귀양 간 바로 그날 자비대령화원으로 임명됐다. 조선시대 최고의 책거리 화가로 꼽히는 이응록(이형록에서 이응록, 다시 이택균으로 개명)의 작품 3점도 전시된다.

책거리는 궁중 및 상류계층 중심으로 발달하다 점차 민간으로 확대되면서 민화 책거리가 유행했다. 현대미술에서도 유화, 팝아트, 사진, 조각,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로 재창조되고 있다. 현대의 책거리 작가 13명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031-288-5300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책그림#정조#신윤복#경기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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