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존엄’ 그리고 ‘우리 안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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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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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상에 대한 예술의 책임,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풀어내는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 앞에 자리한 배영환 씨(위)와 동서고금의 신상과 성상, 가면 등을 결합한 ‘스펙터’ 시리즈를 선보인 김기라 씨(아래).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상에 대한 예술의 책임,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풀어내는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 앞에 자리한 배영환 씨(위)와 동서고금의 신상과 성상, 가면 등을 결합한 ‘스펙터’ 시리즈를 선보인 김기라 씨(아래).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모니터 안에서 장구채만 신나게 움직이고 연주자는 보이지 않는다(‘노크’). 또 다른 영상에선 춤추는 사람은 없고 흰 천만 너울너울 살풀이 춤사위를 이어간다(‘댄스 포 고스트 댄스’).

서울 중구 태평로 플라토미술관에서 열리는 배영환 씨(43)의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전에 나온 신작은 삶과 행위의 본질을 파고든다. 춤과 음악의 본질인 소리와 동작을 추려낸 작품을 통해 살면서도 헛것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을 직시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간 회고적 성격의 이번 전시에선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15년간의 26점을 선보였다. 한 매체만 고집하기보다 설치 영상 회화 도예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 작가적 행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회에 던지는 화두와 위로의 메시지를 수공적 노동으로 버무린 작업에는 사유의 깊이, 보는 재미가 녹아 있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갤러리에서 29일까지 열리는 김기라 씨(38)의 ‘공동선-모든 산에 오르라!’전에서도 세상에 대한 발언과 조형감각을 융합한 개념적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온갖 매체를 능숙하게 다루는 다재다능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신화와 종교적 이미지를 담은 사진 콜라주, 드로잉, 설치작품으로 공동의 이익이란 미명 아래 인간을 짓누르는 억압의 실체를 드러낸다.

치열한 의식과 미학적 완성도의 균형을 갖춘 두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차세대 지형도를 엿보게 한다. 동시대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면서도 그 시선이 냉소적이지 않고 인간적이란 점도 공통된 미덕이다.

○ 유행가의 힘에 대하여

배 씨의 전시는 처음과 끝이 맞물린다. 입구에 설치된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은 사각의 링을 반으로 축소한 작품으로 끝없이 경쟁하고 분투하며 사는 현대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 등장한 화려한 샹들리에(‘디오니소스의 노래’)의 재료는 깨진 술병 조각들. 겉에선 그럴싸한데 안에선 걱정과 고민으로 잠 못 드는 도시인의 불면증을 은유한 작품이다. 마지막에 자리한 텅 빈 종루. 종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고통을 어루만지는 뜻에서 서울 지역 사찰의 종소리를 모아 들려준다. 관객이 종이에 고민을 적어 종루 아래에 두면 종소리로 이를 날려 보낸다는 치유적 의미도 담았다.

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작가. 예술도 그런 공감과 위로의 힘을 지녀야 한다는 그의 확신은 사회 참여적인 초기작부터 내면으로 더 깊어진 근작까지 관통한다. 도시 근로자들이 즐겨 먹는 진통제 같은 알약을 사용한 1990년대 후반 ‘유행가’ 작업, 버려진 가구와 폐자재로 만든 ‘남자의 길’ ‘바보들의 배’ 같은 2000년대 설치작품들. 그의 작가적 여정은 사회에서 소외된, 혹은 배척된 사람들을 감싸주면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묻는다. 그에게 예술이란 비루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5월 20일까지. 1577-7595

○ 공동선의 굴레에 대하여

두산갤러리에 들어서면 박물관처럼 전 세계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동서고금 신상과 성상, 가면과 인형이 작품과 어우러져 있다. 여러 신의 이미지를 해체 변형하고 재구축한 김 씨의 ‘스펙터’ 연작은 익숙한 듯 낯선 괴물처럼 다가온다. 종교든 이념이든 공동의 선을 내세운 것들이 실상은 보이지 않는 족쇄이자 인간을 구속하는 굴레로 작동하는 현실을 꼬집은 작업이다.

작가는 “역사를 돌아보면 똑같은 문제의 반복을 보게 된다”며 “조화와 공존 없는 발전과 번영은 폭력”이라고 말한다. 어떤 포장을 해도 이념과 욕망을 가지고 사람들을 한쪽으로 밀어붙이거나 거세하는 것은 다 폭력이라고 비판하는 작가. 역사가 스며든 낡은 유물과 이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지금 내 안에 괴물이 사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우상처럼 받드는 것이 혹 편견과 욕망은 아닌지를 묻고 있다. 02-708-505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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