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휩쓸고 간 서점가, ‘협상’이 바통 이어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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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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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계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돌풍

16일 저녁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6일 저녁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해 국내 출판계를 흔들어놓은 키워드 ‘정의’의 지위를 올해는 ‘협상’이라는 단어가 이어받을까.

하버드대 교수인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에서 ‘공공을 위한 정의’라는 화두로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인 협상 전문가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8.0)에서 설득과 협상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해 국내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교수의 ‘어떻게…’는 지난해 11월 말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뒤 꾸준히 2, 3위권을 지키고 있다(교보문고 집계). 출판사인 세계사(8.0은 세계사의 브랜드)에 따르면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20만 부가 넘는다. 미국에서 출간된 원서 ‘Getting More’ 역시 상당한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정의’ 열풍을 일으킨 ‘정의란…’과 여러모로 닮았다. 저자가 세계 최고로 꼽히는 유명 대학의 교수이며, 두 권 모두 교수의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엮었다. ‘정의란…’은 샌델 교수의 정치 철학 강연을 모았고, ‘어떻게…’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와튼스쿨 명강의를 추렸다. 국내 초반 판매량 추이도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은 사뭇 다르다. 정의라는 거대 담론을 철학적으로 풀어놓은 ‘정의란…’과 달리 ‘어떻게…’는 굵직한 비즈니스 협상뿐 아니라 소소하게 물건 값을 깎고 화난 애인의 마음을 푸는 법 등 일상에서의 설득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정의란…’보다 읽기도 쉽다는 평가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16일 오후 7시 반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와튼 클래스 인 서울’ 특강을 했다. 특강은 800석 규모의 강연장을 꽉 채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1부 강연에 이어 2부는 한국적 상황 연구 및 청중과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청중 대부분은 20, 30대 젊은이였으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도 눈에 띄었다. 허윤정 세계사 기획편집팀장은 “3만 원을 내야 하는 유료 강연이지만 티켓을 판매한 지 닷새 만에 매진됐다. 회사에서 단체로 온 청중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강의를 들은 직장인 유청범 씨(38)는 “협상이라는 개념을 일상의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 데다 한국 상황에 특화된 내용도 있어 좋았다. 다만 좀 더 깊이가 있길 바랐는데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아쉬웠다”고 말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유명 대학, 유명 교수의 명강의는 이제 베스트셀러의 기본 요건이 됐다”면서 “특히 ‘어떻게…’는 ‘정의란…’보다 베스트셀러로서의 요건을 더 많이 갖췄다”고 설명했다. 전문서로서는 깊이가 떨어져 보이지만 쉽게 읽히고,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 저자의 권위도 인정하게 된다는 것.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협상을 강조한다는 건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가 심각해졌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잘 설득해야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안다”고 분석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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