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음모론은 대중의 의식을 갉아먹으며 몸집 키워

  • Array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 음모는 없다/데이비드 에러너비치 지음·이정아 옮김/544쪽·1만8000원·시그마북스

2001년 9·11테러는 일부의 주장처럼 미국의 자작극일까.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교통사고는 영국이나 프랑스 정보기관의 짓일까.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음모론들이 대중의 의식을 은밀히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영국 언론인인 저자의 판단이다. 이 음모론들이 말하는 음모는 몇몇 특정인을 속이기 위해 꾸미는 계획이 아니다.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음모’다.

최근 가장 큰 음모론의 소재는 9·11테러다.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항공기가 빌딩에 충돌하기 직전에 승객들이 가족들과 나눈 통화에 의구심을 보내며 사건이 조작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운항 중인 여객기에서는 휴대전화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근거다. 이는 일부 언론이 휴대전화 통화 내용이라고 보도한 것과 일부 학자의 통화 실험 결과를 흔들릴 수 없는 사실로 과장해 근거로 삼은 것이다. 사고 당시 많은 통화가 기내전화로 이뤄졌으며, 항공기 운항 중에도 기지국 근처를 지날 때는 통화가 된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는다.

1969년 아폴로의 달 착륙이 미국 정부와 미항공우주국(NASA)의 조작극이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 태생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그럴듯하게 포장돼 확산되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여러 음모론을 살펴보면 이들에 공통된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음모론은 대체로 ‘소수 엘리트 권력이 저지른 반국민적 행위를 폭로하겠다’는 정치적 대중영합주의를 지향한다. 또 특정인의 지위를 과장해 인용하며, 자신의 음모론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면 어떤 무리들이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또 자신이 위협을 받고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으려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컴의 면도날’만 활용해도 허황된 말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14세기 프란체스코 수도사인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이 만든 이 논리 필터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면 새로운 가정이 적게 들어 있는 쪽이 다른 쪽보다 더 개연성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덜 은밀하고, 덜 복잡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음모론#대중의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