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국내서 커피 처음 팔았던 곳 서울 손탁호텔인가, 인천 대불호텔인가

  • Array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1902년 세워진 손탁호텔 전경(위쪽 사진)과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머물렀다는 인천 대불호텔(아래쪽). 왼쪽에 높게 솟아 있는 건물이 대불호텔이다. 롯데호텔박물관·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제공
1902년 세워진 손탁호텔 전경(위쪽 사진)과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머물렀다는 인천 대불호텔(아래쪽). 왼쪽에 높게 솟아 있는 건물이 대불호텔이다. 롯데호텔박물관·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제공
얼마 전 한 영화감독을 만났다. 구한말 배경의, 커피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에 내심 반가웠다. 영화의 주 무대는 1902년 독일 여성 손탁이 서울 중구 정동에 지은 손탁호텔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팔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영화의 촬영 계획은 이미 세워진 상태였다.

○ 최초의 근대식 호텔에 커피가 없었다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은 손탁호텔보다 14년 앞서 1888년 세워진 대불호텔이다. 경인선 철도가 놓이기 전 인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조랑말을 타고서도 한나절이 걸렸다. 1883년 개항한 인천항(옛 제물포항)을 통해 조선 땅을 밟은 이방인들은 인천에서 하룻밤을 묵어야만 했고, 대불호텔은 그런 수요를 바탕으로 생겨났다.

일본 해운업자가 현재의 인천 중구 중앙동에 세운 이 호텔은 서양식으로 설계된 3층 벽돌 건물이었다.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맞았고, 침대가 딸린 객실 11개와 다다미 240개 규모였다.

배재학당을 세운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의 비망록이 담긴 ‘한국에서 우리의 사명(Our Mission in Korea)’에는 대불호텔과 관련한 기록이 등장한다. 그는 1885년 4월 5일 처음 인천을 방문해 일주일간 머물렀던 때를 회상하며 “호텔 방은 편안할 정도로 넓었다. 테이블에 앉자 잘 요리되어 먹기 좋은 서양 음식이 나왔다”고 적었다. 앞서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운영하는 호텔은 없지만,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다고 들었다. 짐을 들게 하기 위해 손짓으로 막노동꾼을 불렀고, (그곳으로) 출발했다”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그가 머물렀던 호텔은 대불호텔이었다. 1888년 이전 이미 대불호텔이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인 화가 아널드 새비지 랜도어도 자신의 책 ‘고요한 아침의 땅, 조선(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서 “1890년 제물포에는 세 개의 유럽식 호텔이 있었는데 그중 다이부쓰 호텔(대불호텔의 일본식 발음)을 나의 근거지로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 처음 커피가 소개된 때는 1644년이었고, 그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이 문을 연 것은 1720년이었다. 일본에 의해 인천항이 개항했을 즈음 서양인들에게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일상이었다.

따라서 아펜젤러와 랜도어가 숙소로 머물렀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대불호텔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나 당시 사용했던 메뉴판 같은 자료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먼바다를 건너와 호텔에 묵는 손님들을 위해 서양 음식과 함께 커피를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손탁호텔에서도 커피를 팔았다는 명확한 근거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한말 호텔에서 최초로 커피를 판매했던 시기는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최소 17년은 앞선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숭늉 마시듯 마시는 커피

손탁호텔이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라는 이야기도 사실과 다르다. 1899년에 이미 대안문(지금의 덕수궁 대한문) 앞에 팔레 호텔(Hotel du Palais)이, 1901년에는 서대문역 앞에 스테이션 호텔(Station Hotel)이 문을 열고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커피는 개항 이전부터 서양 선교사들, 외교관 그리고 외국을 빈번히 드나들던 상인들에 의해 이미 우리나라 곳곳에서 애호되고 있었다. 그리고 개항 이후 본격적으로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게 됐다. 이 시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커피는 낯선 음료가 아니었다.

1895년 간행된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유길준은 커피에 대해 “서양 사람들은 커피를 우리나라에서 숭늉 마시듯 마신다”라고 기록했다. 또 그는 당시 각 나라가 사고파는 물품 중 커피를 포함시켜 분류를 하기도 했는데 “브라질, 멕시코, 과테말라 등 남미 국가에서는 커피를 수출하고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등에서는 수입하고 있다”고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매년 여름이면 필자는 대불호텔 터를 찾는다. 벌써 6년째다. 대불호텔이 중국음식점으로 바뀌고 1978년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빈터로만 남아있더니 급기야 지난여름 찾았을 때에는 상가 신축공사 알림판이 나붙어 있어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현장 안을 들여다보고는 반가워 놀랐다. 터파기 공사 중 대불호텔 유물들이 발견돼 다행히 공사는 중지되고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마터면 사라져 버릴 뻔한 우리 커피 역사의 흔적이 해가 바뀌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기대와 걱정이 함께한다. 늦기 전에 달려가 봐야겠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drmahn@hotmail.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