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도량형 이야기]인간 감성까지 측정할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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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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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게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1kg짜리 ‘국가킬로그램원기’(왼쪽). 이 원기를 기준 삼아 사람의 행복감을 무게로 나타낼 수는 없겠지만, 과학자들은 특정 자극에 대한 뇌의 활성화 정도를 통해 사람의 감성을 객관적인 단위로 측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1kg짜리 ‘국가킬로그램원기’(왼쪽). 이 원기를 기준 삼아 사람의 행복감을 무게로 나타낼 수는 없겠지만, 과학자들은 특정 자극에 대한 뇌의 활성화 정도를 통해 사람의 감성을 객관적인 단위로 측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아내는 아침마다 몸무게를 잰다. 몸무게를 한 번도 말해준 적은 없지만, 체중계에서 내려온 후 반응을 보면 아내의 체중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날은 생각보다 체중이 덜 나갈 때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불평을 하거나 아침 식사를 건너뛰는 건 체중이 늘어났다는 걸 말한다. 아내에게 체중계는 몸무게를 재는 것 이상의, 매일 아침의 행복감을 측정하는 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아내가 체중계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몸무게처럼 ‘킬로그램(kg)’으로 따져볼 수 있을까. 우선 이 킬로그램이란 것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무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전자식 체중계에는 ‘로드 셀(하중센서)’이란 소자가 들어 있다. 이 소자에 가해지는 압력의 변화를 전기신호로 적절히 변환해 그 결과를 문자판에 표시해 준다. 그런데 이렇듯 누르는 힘의 크기를 재는 일반 체중계는 중력이 다른 곳에서는 측정값이 달라진다.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인 달에서 몸무게를 재면 지구에서 잰 값의 6분의 1밖에 나가지 않는다.

같은 지구상에서도 위치에 따라 무게가 다르게 측정된다. 중력은 일반적으로 위도가 높을수록, 즉 적도에서 극지방으로 갈수록 더 커진다. 북극에서의 중력은 적도에서보다 약 0.5% 크다. 적도에서 몸무게가 100kg 나가는 A 씨가 같은 전자식 체중계로 북극에서 잰 몸무게는 100.5kg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체중계는 복싱이나 레슬링처럼 체급별 운동선수들의 계체량 때는 사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계체량을 통과한 선수가 다른 나라에서는 통과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따라서 스포츠 경기에선 추를 이용하는 구식 저울을 쓴다. ‘무게’ 대신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질량(장소나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물질의 고유한 양)’을 측정한다는 뜻이다. 정확한 측정이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표준분동’과 ‘천칭’으로 질량을 잰다. 천칭의 한쪽 팔에 재려는 물체를 올리고 반대쪽 팔에 표준분동을 올린다. 천칭이 평형을 이룰 때 표준분동의 총질량이 그 물체의 질량이다.

○ 질량의 표준과 한계


킬로그램은 1793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학자들이 한 변의 길이가 10분의 1m(10cm)인 정육면체 모양 증류수의 질량을 기준으로 정한 단위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적으로 킬로그램 단위를 정하는 표준분동(국제킬로그램원기)을 기준으로 한다.

이 원기는 높이와 지름이 각각 39mm인 둥근 기둥 모양으로, 1878년 1kg의 귀금속(백금 90%, 이리듐 10%)으로 만들어졌다. ‘미터원기’처럼 이것 역시 여러 개를 복사해 각 나라의 ‘국가킬로그램원기’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킬로그램원기는 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복사본 No.72’이다. 이 표준은 5년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도량형국(BIPM)에 가서 국제킬로그램원기를 기준으로 교정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국제킬로그램원기와 여러 나라의 국가킬로그램원기가 약 10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차이가 나고, 그 차이가 지난 100여 년간 점점 커져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계에서는 다른 기본단위(길이, 시간, 온도, 광도, 전기, 물질의 양)처럼 인공물이 아닌 재현 가능한 물리현상을 이용해 새롭게 질량의 표준을 정의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와트 밸런스’와 ‘아보가드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 행복감을 측정한다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저울과 표준분동으로 사람의 행복감을 잴 수 있을까.

행복감을 킬로그램으로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무게란 개념이 행복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감을 느낄 때 사람의 무게 또는 질량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행복이나 슬픔 등의 감성을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뇌 영상 연구를 통해 행복할 때와 슬플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병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는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손금 보듯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뇌혈관 속 미세전류를 측정하는 뇌자도(MEG·Magnetoencephalography) 장치는 뇌가 얼마나 활성화되는지를 알려준다. 이 두 장치를 활용하면 특정한 자극에 뇌의 어떤 부분이 얼마만큼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다. 관련 데이터를 대량으로 모아 분석하면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는 것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아직은 초보 단계지만 이런 연구가 계속 발전한다면 사람이 느끼는 행복, 사랑, 슬픔 등의 감정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성을 나타내는 단위에 대한 연구도 언젠가 이뤄질 것이고 말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해 이젠 감성을 측정하려는 시도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해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무서운 세상이 되어간다는 두려움도 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낼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과학기술이란 칼이나 불과 같다. 잘 사용하면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과학자들에게는 합리적 과학정신과 함께 인간과 생명의 중요성, 문화와 예술, 인류 공동의 가치와 같은 감성과 지성이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균형 잡힌 사고와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이호성 박사(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 hslee@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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