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은 왜 종이에다 사인 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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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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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백건우 & 파리 오케스트라’ 공연이 끝난 뒤 공연장 로비에 긴 줄이 생겼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지휘자 파보 예르비의 사인회였다. 백건우의 음반을 들고 온 한 관객이 예르비에게도 사인을 해달라고 내밀자 그는 백건우에게 허락을 받은 뒤 음반 속지 구석에 사인을 했다. 이상민 EMI 부장은 “해외 연주자들은 다른 연주자의 CD에 사인하는 것을 예의가 아니라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연주회가 끝난 뒤 로비에서 열리는 사인회에 국내 관객들은 프로그램 북, 다이어리, 흰 종이, 심지어 다른 연주자의 음반까지 ‘자유롭게’ 들고 온다. 2010년 한국을 찾은 ‘베를린필 12 첼리스트’는 사인회에서 “왜 한국 관객들은 음반 대신 종이를 이렇게 많이 들고 오느냐. 다음부터는 CD 사인회라고 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유럽에서는 연주자 사인회에 무대에 선 연주자의 음반을 가져가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에 의아하게 여긴 것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리사이틀에는 피아노 반주자가 있는데,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의 경우 함께 사인회에 참석하고 싶어 한다. 이럴 때 관객들이 지명도가 높은 현악기 연주자의 CD만 들고 와 피아니스트에게 내미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민망한 장면을 피하기 위해 안내 담당 직원이 관객의 CD를 받아 바로 해당 연주자 앞에 놓고, 반주자 앞에는 프로그램 북을 펼쳐놓는 ‘사전 작업’을 잽싸게 할 때도 있다.

사인회를 주도하는 음반사나 공연기획사가 가장 꺼리는 관객은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사인 받을 음반을 한 보따리 가져오는 사람. 사인회를 잘 하지 않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지난해 11월 내한공연이 끝난 뒤 사인회를 열면서 ‘1인당 1회 사인’ 원칙을 고집했다.

2000년대 초 첼리스트 장한나가 지방 공연을 마친 뒤 사인회를 하기 위해 로비로 나오려 하자 관객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됐다. 주최 측 관계자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이 상태로는 못한다. 장내가 정리될 때까지 한나 씨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뒤에야 사인회가 진행됐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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