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121>복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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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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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죽어도 좋을 음식”… 경국지색에 비유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미인이라는 뜻이다. 음식 중에도 이런 요리가 있다. 기가 막히게 맛이 있지만 자칫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음식이다. 옛날부터 나라를 망칠 수도 있는 미인에 비유된 음식이 바로 복어요리다.

그렇기 때문에 복어요리가 더더욱 일품요리로 대접받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복어요리를 보고는 한결같이 “먹고 죽어도 좋을 음식” 혹은 “복어는 먹고 싶고 목숨은 아깝다”며 예찬론을 펼쳤다. 심지어 ‘천계옥찬(天界玉饌)’이라며 하늘나라에 사는 신선과 선녀들이 먹는 음식에 비유하기도 했다.

명나라 때 이시진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복어에는 독이 있어 맛은 기가 막히지만 잘못 다루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복어알에 들어있는 독은 적게 먹으면 입술 주위나 혀가 마비되고 구토를 일으키지만 일정량을 넘으면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복어를 먹으며 목숨을 걸었을 정도이니 예부터 복어를 놓고 먹어라 말아라 말도 많았다. 송나라 때 시인은 복어를 먹으며 “한 번의 죽음과 맞부딪쳐 볼 만하다”고까지 했다.

반면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이라는 글에서 복어를 먹지 말라고 썼다. 복어 맛에 혹한 사람들이 천하제일의 맛이라고 주장하지만 자기가 보기에는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 목구멍이 좋아하는 것만 알고 잘못 먹으면 피해가 크다는 사실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잠깐의 기쁨이야 얻겠지만 끝내는 목숨이 끊어질 수 있으니 복어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복어 조리법이 발달한 지금은 거의 해당하지 않는 말이지만 옛날에도 복어 자체를 먹지 말라는 뜻보다는 작은 즐거움에 빠져 큰일을 그르치지 말라는 비유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무심코 복어를 먹으면서도 곰곰이 따지고 보면 되새겨 볼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공통된 새해 소망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한 해 동안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를 기원하며 무병장수를 소원한다. 또 하나는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인데 동서양 새해 음식에 공통적으로 이 두 가지 소망이 담겨 있다.

독이 있어서 자칫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복어가 예전에는 장수의 상징이었다. 복어의 옛날 한자 이름은 태어(U魚)다. 옛날에는 복어를 뜻했지만 현대 중국어에서는 고등어를 의미한다. 그런데 복어 또는 고등어 등이라는 뜻의 태배(U背)라고 하면 노인을 가리킨다. 70세를 고희(古稀)라고 부르는 것처럼 태배는 90세를 뜻한다. 이는 ‘시경(詩經)’에서 비롯된 단어로 노인 몸에 생기는 반점이 마치 복어 등에 있는 반점과 같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새해이니만큼 복어를 먹을 때 태배의 뜻을 되새기며 올 한 해 건강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또 송나라 시인의 노래처럼 목숨 걸고 맛있는 음식에 도전하듯 죽을 각오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도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사소절에서 복어를 먹지 말라고 한 것처럼 사소한 즐거움에 빠져 큰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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