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계에 부는 日流… 실력파 극작가 두 주역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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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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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우치 겐스케 극단 도비라좌 대표 “동서양 설화 융합편집 이야기의 힘 밀고간다”
히라타 오리자 극단 청년단 대표 “날카로운 사실주의로 일본인 혼네 끄집어내”

극단 도비라좌 대표 요코우치 겐스케 (왼쪽), 극단 청년단 대표 히라타 오리자
극단 도비라좌 대표 요코우치 겐스케 (왼쪽),
극단 청년단 대표 히라타 오리자
한국 연극계에 조용히 일본 연극 바람이 불고 있다. 주로 번역극으로 소개되는 이들 일본 연극의 극작가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1961, 62년에 태어나 극작과 연출을 겸하고, 자신의 극단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웃음의 대학’과 ‘너와 함께라면’으로 국내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킨 미타니 고키, 대학로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연 중인 연극 ‘하카나’의 요코우치 겐스케(일본극작가협회 부회장)는 61년생이다. ‘도쿄노트’와 ‘과학하는 마음’ 연작으로 유명한 히라타 오리자와 ‘다락방’과 ‘블라인드 터치’의 사카테 요지(일본극작가협회 회장)는 62년생이다.

이들 중 히라타 오리자 극단 청년단 대표와 요코우치 겐스케 극단 도비라좌 대표가 최근 한국에 왔다. 히라타 대표는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본인 원작의 번역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를 보고 내년 1월 12∼15일 같은 곳에서 공연할 청년단의 내한공연 ‘혁명일기’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요코우치 대표는 서울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두 달 째 공연 중인 본인 원작의 ‘하카나’ 공연을 격려하기 위해 들렀다.

동아일보를 각각 방문한 두 사람과 개별 인터뷰를 하면서 두 사람이 동년배 친구이자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지녔다는 것을 발견했다. 히라타 대표는 1984, 85년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유학생활까지 한 한국통이다. 그의 ‘서울시민’ 5부작은 1909∼1939년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들의 삶을 10년 단위로 풀어낸 작품이다.

요코우치 대표는 열다섯 살 때 재일교포 극작가 김봉웅(쓰카 고헤이)의 연극을 보면서 연극에 눈을 떴다. 요코우치 대표는 “우리 시대 일본 연극인 대부분은 쓰카 선생님의 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정작 선생의 모국에서 그분의 위상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년임에도 해맑은 동안이라는 점도 둘은 닮았다.

하지만 둘의 연극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히라타 대표의 연극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15분을 무대에서도 15분간 풀어낸다고 할 정도로 사실성이 뛰어나다. ‘조용한 연극’으로 통칭되던 그의 연극은 특정한 공간에서 일정 시간 동안 펼쳐지는 일상을 채보해 극화해내면서 그 이면에 감춰진 일본인들의 ‘혼네’(본심)를 날카롭게 묘파한다.

“서양에서 수입된 근대연극을 일본인의 독특한 신체와 화법에 맞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 극작의 목표입니다. 그를 통해 인간이 원래의 초심과 달리 스러져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일본 최대 극단인 청년단의 신작 ‘혁명일기’는 옴 진리교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시민단체로 위장한 채 공항 폭파 테러를 기도하는 인물들이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와해되는 과정을 블랙 코미디로 그렸다.

“21세기에 혁명을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테러리스트나 신흥종교 신자들이 인간적으로는 더 순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순수함이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지요.”

히라타 대표와 달리 요코우치 대표의 연극은 현실에선 15년간 벌어진 일을 무대에서 15분 만에 풀어낸다. 동서양의 설화를 뒤집고 상호 연결하며 신화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시다 희곡상을 안겨준 ‘바보에겐 보이지 않는 라만차의 임금님’은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와 돈키호테를 뒤섞었다. ‘하카나’는 도깨비와 도박을 해서 미녀를 얻었는데 알고 보니 시체를 조합한 괴물이었다는 일본 설화와 프랑켄슈타인, 인어공주, 파우스트 등의 서양설화를 조합해 빚어낸 작품이다. 일본 최고의 가부키 배우이자 연출가인 이치가와 엔노스케와 손잡고 만든 슈퍼가부키 ‘신삼국지’ 3부작은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가 여자라는 도발적 설정으로 인기를 얻어 6년째 장기공연 중이다.

“전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와 전설의 숨은 지혜와 통찰을 새롭게 끌어냄으로써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미의식을 되찾아주고 싶습니다.”

그는 “내년 쓰카 선생의 3주기를 맞아 선생의 작품 중 유일하게 연극화되지 않은 주신구라(일본 충신의 대명사)를 풍자한 소설을 연극으로 올리려 한다”면서 “이 작품이 한국에서도 소개돼 선생의 진면목이 더욱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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