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 이겨낸 한반도 인류 생존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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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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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새 단장
1000여 유물 전시 - 무덤, 주거지 재현해 생활상 생생

새로 단장해 13일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구석기실.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를 함께 전시했다. 이진민 학예연구사는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도 면적 대비 주먹도끼 출토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새로 단장해 13일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구석기실.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를 함께 전시했다. 이진민 학예연구사는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도 면적 대비 주먹도끼 출토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구석기시대에 인간은 돌을 깨뜨려서 도구를 만들었고, 신석기 때는 토기를 빚었다. 그러나 선사시대는 이런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당시에도 인간은 생동감 넘치고 다양한 삶을 살았다.

13일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연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구석기실·신석기실에서 옛사람들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선보이는 유물 600점을 포함해 총 1000여 점을 전시했다. 최근 발굴된 자료를 많이 포함시켰고, 각 유물이 나온 무덤, 주거지 등을 재현해 선사시대 문화를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12일 국립중앙박물관 이진민 학예연구사의 안내로 전시실을 미리 둘러보았다.

구석기실의 첫 번째 주인공은 주먹도끼. 한강부터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된 50여 점을 한데 모았다. 1978년 미군 병사가 한탄강변에서 처음으로 주먹도끼를 찾아냈다. 당시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외에서는 주먹도끼를 쓰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작살 꽂힌 고래 뼈. (위), 동물 모양 토제품. (아래)
작살 꽂힌 고래 뼈. (위), 동물 모양 토제품. (아래)
오늘날 뭉뚱그려 구석기시대로 부르지만 기원전 4만 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다용도 대형석기가 주를 이뤘고, 이후에는 전문적인 기능을 지닌 도구가 등장했다. 창으로 사용된 슴베찌르개, 가죽의 털을 다듬을 때 쓰는 밀개, 뚫을 때 이용하는 뚜르개 등을 볼 수 있다. 작은 돌날 여러 개를 나무나 동물의 뼈에 끼워 칼이나 창처럼 만들기도 했다.

빙하기가 끝난 신석기에는 동식물상이 변화하면서 도구도 달라졌다. 이 시기에 처음 토기가 나타난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라고 하면 포탄형의 빗살무늬토기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동북 지역은 번개무늬와 점줄무늬, 중서부 지역은 빗살무늬, 중동부나 남해안은 누름무늬 토기가 많이 나왔다. 높이는 10cm부터 90cm까지, 바닥이 평평한 것, 동그란 고리가 달린 것, 굽다리 토기까지 크기와 모양도 다양하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구분한 토기 70여 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신석기실은 바다 자원을 적극 활용했던 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은 증거로 작살이 꽂힌 고래 뼈(부산 동삼동 출토),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된 배와 노(경남 창녕군 비봉리 출토)를 전시했다. 발견된 배는 길이가 3.1m지만 원형은 4m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는 소나무로, 노는 상수리나무로 만들었다. 노는 물갈퀴 부분이 1.15m로 서서 노를 저었던 것으로 보인다. 높이가 3m에 이르는 부산 동삼동 신석기시대 조개무지 토층도 전시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이 굴, 소라, 전복으로 사람들이 잠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총 48기의 무덤이 발견된 부산 가덕도 유적에서 나온 신석기 인골도 눈길을 끈다. 무릎은 굽히고 팔은 X자 형태로 매장했다. 팔에는 조개팔찌 8개를 꼈다. 옥과 상어이빨, 사슴 다리뼈를 이용한 장신구도 함께 나왔다. 신석기 사람들이 사후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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