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절망과 우울’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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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7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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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협연할 해설 김이곤, 피아노 김도석, 테너 이인학(왼쪽부터)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협연할 해설 김이곤, 피아노 김도석, 테너 이인학(왼쪽부터)
사랑을 잃은 청년이 연인의 집 문에 ‘안녕히…’라고 쓴 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죽음의 여정을 떠난다. 도중에 연인과 사랑의 밀어를 새겼던 보리수 밑을 지나고, 편지를 전해주던 우편마차도 만난다. 하지만 연인의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까마귀의 조롱과 개의 울부짖음만이 청년의 죽음을 재촉한다. 결국 무덤에 도착한 청년은 살아갈 기력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끝내 고독과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다.

슈베르트가 스스로의 심정을 독백처럼 노래한 연작 가곡 ‘겨울나그네(원제 겨울여행)’는 어둡고 절망적이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 24곡을 완성한 이듬해 31세의 나이로 가난과 병, 고독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병마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해보고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와 사랑을 잃은 젊은이가 눈보라 치는 겨울에 죽음을 향해 방황하는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겹친다.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성악가와 관객에게는 공통의 꿈이 있다. 성악가는 겨울나그네 전 곡을 무대에서 불러보는 것이고, 관객은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전 곡을 객석에서 직접 듣는 것이다.

국내에선 좀처럼 실현되기 힘든 이런 귀한 꿈을 3인의 젊은 음악인이 현실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테너 이인학과 피아노 김도석 그리고 음악감독 김이곤.

지난달 김이곤이 후원하는 ‘푸른아시아’ 카페콘서트에서 협연한 이들은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전국 여행 연주회를 계획했다. 이들은 내년 2월까지 전국 어디든 관객이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 현장에서 노래할 계획이다.

빌헬름 뮐러의 시 24편에 곡을 붙인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죽기 1년 전인 1827년 질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만들었다.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방랑의 길을 떠나는 첫 곡 ‘안녕히(Gute Nacht)’를 시작으로 줄기에 사랑의 말을 새겨놓았던 ‘보리수’를 지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에 이르기까지 절망에 젖은 청년의 내면을 매혹적인 선율로 표현한 연가곡이다.

그 동안 연주됐던 겨울나그네와는 다르게 곡마다 해설을 붙여 누구나 쉽게 곡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이번 연주회는 억제된 감정과 차원 높은 세련미로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겨울나그네를 처음 접하는 클래식 초보 관객조차도 정상급 테너와 피아노 반주가 만들어내는 음울한 곡조에서 극단적인 절망과 슬픔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아욱스부르크 오페라하우스 전속 솔리스트로 활약한 테너 이인학은 스페인, 독일,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에서 오페라 ‘사랑의 묘약’, ‘라보엠’, ‘마적’, ‘햄릿’, ‘라 트라비아타’, ‘박쥐’,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 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해 400여 회 공연했으며 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프라노 김영미, 테너 엄정행, 바리톤 최현수, 요헨 쿱퍼 등 국내외 유명 성악인과 일본, 미국 초청연주를 한 바 있는 피아노 김도석은 테너 엄정행 뉴욕독창회 반주, 테너 조창후 ‘리더아벤트(Liederabend)’ 반주 등 독일가곡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해설을 곁들여 연주회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진행하는 김이곤은 한국능률협회 등에서 음악관련 강의를 담당했으며 극동아트TV 음악감독으로 음악프로그램 및 클래식 콘서트의 기획과 제작, 해설을 맡아왔다.

김이곤 감독은 “푸른아시아 카페콘서트에서 선보인 겨울나그네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 겨울시즌 순회 연주회를 기획하게 됐다”며 “슈베르트를 잘 모르는 관객이라도 이런 흔치 않은 기회에 겨울나그네 전곡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겨울나그네 첫 연주회는 12월 19일 월요일 오후 8시 서울 삼성동 ‘포니정 홀’에서 열린다. 김 감독은 “앞으로 전국 어디서나 연주회 요청이 오면 기꺼이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겨울 나그네 연주회는 음악을 사랑하는 기업이나 동호회 등의 신청을 받아 진행하며 음악홀, 미술관, 문화예술회관, 카페 등 피아노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추어진 곳이라면 어디라도 신청이 가능하다.
공연 신청 문의 (인치엘로 엔터테인먼트 02-3785-3401, eomtaesang@naver.com)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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